민중미술이 올해 미술계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두 대표 작가의 개인전이 대구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얼굴 시리즈의 작가 권순철은 “캔버스 하나로 결정적인 감동을 주고 싶다”며 지금도 회화를 고수한다. 주재환은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이 유쾌하다. 1980년대 시대의 고민으로 뜨거웠던 30대 청년들은 이제 칠순을 넘겼지만 시선은 여전히 현실에 닿아있다.
“넌 ‘현발’ 이전부터 ‘민중(미술) 작가였어.”
1987년 작 ‘모내기’ 그림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이유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동갑내기 민중미술 작가 신학철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단다. 제 자랑처럼 느껴져서인지 이를 전하는 재불작가 권순철(72) 화백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약칭 현발로 불리는, 1980년 ‘현실과 발언’ 전시회는 민중미술을 알리게 된 신호탄이다. 작품이 불온하다며 미술관 측이 전기 스위치를 내리는 바람에 ‘촛불 전시’를 했던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대규모 회고전 ‘권순철, 시선’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지난달 22일 권 화백을 만났다. 지역작가를 조명하는 전시다. 서울대 회화과 출신의 그는 경북 상주에서 성장해 대구 경북고를 나왔다. 초등 3학년 때 그린 스케치에서 지난해 그린 예수 초상까지 135점을 무더기로 푼 전시에서는 현재의 브랜드가 된 ‘얼굴 시리즈’ 원형을 만날 수 있다. 신학철의 말처럼 20대이던 1960년대 말부터 돌 깨는 석공, 갯벌의 아낙, 서울역 주변 행상, 포장마차 아줌마 등 서민의 얼굴을 특유의 꿈틀거리는 붓질로 그려왔음을 알 수 있다. 여인 누드조차 붓질이 거칠다.
“보기는 얌전한데 그림은 왜 그리 험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야수파가 기질과 맞았던 것 같아요.”
인물을 통해 민중의 삶을 표현했던 그림 세계는 점점 얼굴을 클로즈업 시킨다. 전시장은 자화상을 비롯해 얼굴 천지다. 2000년대 들어 그린 유화에는 유독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많다. 200호가 넘는 대작에 얼굴 하나를 담거나, 부부상처럼 한 캔버스에 그려 넣기도 하고, 각각의 얼굴을 격자처럼 배열해놓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며 형체는 더 뭉그러지고 색은 더 강렬해진다. 물감을 나이프로 짓이기거나 붓으로 뭉갠 물감 덩어리가 물컹거리듯 얹혀 있다. 가까이선 도저히 형체가 파악되지 않는 얼굴들은 10미터쯤 물러서야 윤곽이 드러난다.
“80, 90세가 된 분들입니다. 일제강점, 전쟁과 분단, 이산, 4·19와 5·18 등을 겪으며 한이 많았을 테지요.”
그는 6·25전쟁에서 아버지와 삼촌을 잃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집중한 것은 이런 개인적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0년대부터 파리에서 체류하고 있는 그는 서울에 올 때마다 ‘시대의 풍상을 견디어낸 민중의 얼굴’을 채집하러 서울역, 종묘, 동대문시장, 파고다공원 등 노인들이 몰린 곳을 찾았다.
“그렇게 스케치하러 다니다보면 굉장히 좋은 얼굴을 만나요. 거친 시대를 살아왔으면서도 어려움을 잘 이겨내 당당하고 주눅 들지 않는…. 얼굴에 담긴 아름다움과 정신적 깊이를 잘 표현하면 그게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한국의 정신이 될 겁니다.”
외국에 체류하면서 외려 깊어진 한국의 정신에 대한 관심은 몸 시리즈로 확장된다. 주먹, 손, 등짝 등 신체 일부에도 얼굴만큼 표정과 정신이 있다는 걸 그의 회화는 말한다. 몸 그림에는 모두 넋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서양인과 다른, 한국인의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건 화가의 의무”라는 그는 “내 그림을 통해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92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으며, OECD 벨기에대사관·프랑스 대사관 등에 그림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대구=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다시 보는 민중미술의 미학] 시대 품은 얼굴들… 권순철 회고전
입력 2016-03-07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