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저축률 ‘불황형 증가’… 금리 낮아도 “모으고 보자”

입력 2016-03-05 04:03

중학교 교사인 박모(49·여)씨는 최근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앞으로 적금을 들었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매달 20만원씩 넣기로 했다. 박씨는 4일 “앞날을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명절 세뱃돈 받은 것도 포함해 꾸준히 저축할 계획”이라며 “부족한 부분은 외식비나 문화생활 횟수를 줄여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 1%대 초저금리 시대에 가계 저축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리가 낮아져도 물가 하락세가 더 커 실질금리는 오르는 데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가계에서도 ‘불황형 흑자’가 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대호 KDB산업은행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2010∼2014년 가계저축률 증가는 실질금리 상승과 불확실한 경기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선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0∼2014년 금리는 0.18% 포인트 하락했지만 물가는 1.68% 포인트 하락해 실질금리는 되레 1.50%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가계순저축률은 6.1%로 2004년(7.4%) 이후 가장 높다. 가계순저축률은 가계 순저축(처분가능소득-실제 최종소비)을 가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수치다. 2010년(4.11%)에 비해 약 2% 포인트 늘었고, 순저축 금액도 같은 기간 31조1000억원에서 56조1000억원으로 25조원 증가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가계저축 증가세는 미래 투자와 소비 재원을 늘리고,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하지만 최근의 가계저축률 증가는 1990년대 이후 성장률 둔화에 따른 장기하락추세와 맞지 않는 현상이다. 가계저축률은 1990∼1994년 21.8%에서 1995∼1999년 16.7%, 2005∼2009년 4.3%로 떨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투자해도 자산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심리가 강해 많은 이들이 돈을 단순히 쌓아놓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가계저축이 늘어도 투자가 늘지 않고 소비도 줄어드는 디플레이션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소비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점도 저축이 늘어나는 이유다.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 가계부채로 늘어나는 상환부담, 노후불안에 따른 노인층의 저축수요, 전·월세 보증금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소비성향은 71.9%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데도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 비중은 되레 줄고 있다. 적자가구 비중은 2005년 26.4%에서 지난해 21.0%로 떨어졌다. 특히 소득 하위 20%(1분위)의 적자가구 비율이 같은 기간 57.9%에서 42.5%로 하락 폭이 컸다. 저소득층일수록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있다는 의미다. 성 교수는 “1980, 90년대 고도성장기 당시에는 소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저축률이 높았던 것”이라며 “현재 수치상 저축률이 높다고 해서 예전과 같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