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피해가 속출하는 ‘가짜 최고경영자(CEO) 이메일 송금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에서 검거됐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이들은 발신자 이름을 피해업체 대표이사의 것으로 바꾼 이메일 몇 통으로 재무 담당자가 거액을 부치도록 만들었다.
경찰청은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의료업체로부터 15만 달러(약 1억8218만원)를 가로챈 혐의(사기)로 총책 F씨(31) 등 나이지리아인 3명을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범행 직전 나이지리아로 건너간 또 다른 총책 B씨(30)에 대해서는 현지에 수사 공조를 요청했다.
이들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오전 11시쯤 대표이사를 사칭한 이메일을 보내 재무 담당자가 국내 계좌로 돈을 부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구글의 이메일 서비스인 ‘지메일’을 범행에 이용하면서 발신자 이름을 대표이사 K씨로 바꿨다. 돈이 바로 입금되지 않자 역시 K씨인 양 “지금 회의 중인데 대금 지급에 문제가 있느냐. 업체가 기다리고 있다”며 독촉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공조 요청을 받은 우리 경찰은 해당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은 뒤 은행 방문을 유도했다. 그렇게 지난달 16일 서울 이태원 모 은행 한남동지점에 나타난 인출책과 길 건너 커피숍에 있던 F씨 등 감시조 2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서울 소재 대학의 유학생인 F씨와 B씨가 난민 자격으로 체류 중인 다른 2명을 섭외해 범행을 벌인 것으로 본다. 범행 계좌는 인출책이 난민신청 후 받은 외국인등록증으로 개설한 외국환 계좌였다. 경찰은 이들 주거지에서 또 다른 15만 달러 입금거래 영수증을 발견해 거래 내역을 분석 중이다.
FBI는 2013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각국 기업을 상대로 한 ‘이메일 송금 사기’의 피해 규모를 20억 달러(약 2조4290억원)로 집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美 기업 상대 이메일 송금사기 범죄자들은 한국에도 있었다
입력 2016-03-03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