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 듯 숙취에 시달리며 A씨(48)가 눈을 뜬 곳은 서울 서대문구의 모텔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채 택시를 타고 집 근처에 내린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불안해진 A씨는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했다. 고작 하룻밤 새 1100만원이나 카드를 긁은 것으로 나왔다. 지갑 속 현금 50만원도 사라졌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엄청난 금액을 짧은 시간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1주일 뒤 서울 강남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이 모텔 주변 CCTV를 살펴보니 수상한 사람이 A씨를 부축하고 있었다. 서대문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장모(54·여)씨였다. 이어진 경찰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해 12월 16일 만취해 모텔 주변에 쓰러져 있던 A씨를 발견한 건 인근 술집 사장인 김모(54·여)씨였다. 그는 자기 가게로 데려간 뒤 A씨 지갑에서 현금 50만원을 빼냈다. 이어 A씨 신용카드를 마구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게에서 100만원을 결제한 뒤 이웃 가게 3곳을 찾아가 술값 명목으로 344만원을 긁었다. 한번에 큰 금액을 긁으면 들통이 날까봐 8차례에 걸쳐 결제했다고 한다.
그러곤 인근 술집 주인 장씨에게 연락해 ‘수수료’로 200만원을 받고 만취한 A씨와 그의 신용카드를 넘겼다. 장씨는 술집 4곳과 편의점 3곳을 번갈아 찾았다. 한 가게에서 몇 번씩 결제하는 수법으로 19차례 708만원을 썼다. 실컷 카드를 긁은 장씨는 A씨를 모텔에 누이고 달아났다.
강남경찰서는 특수절도 등의 혐의로 김씨를 구속하고 장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와 장씨는 장사가 잘 안 돼 범행을 공모한 터였다. 이들은 “술값 지출을 가족에게 감추려 하는 취객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다른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술 한번 잘못마셨다가… 깨어보니 1100만원 카드결제
입력 2016-03-03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