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을 계산하려면 대략 근속연수에 1개월치 월급을 곱하면 된다. 이게 일반 근로자의 법정 퇴직금 액수다. 임원의 퇴직금 산출 방식은 다르다. 회사별 규정에 따라 지급받는다. 대개 월급에 재임기간을 곱하고 지급률(배수)을 다시 곱하는 식이다. 지급률은 회장, 사장 등 직위에 따라 차이를 둔다. 회장 지급률이 6배라면 재임 1년당 1개월치가 아니라 6개월치 급여를 곱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근로자 퇴직금 산출에 이 방식을 대입하면 액수가 6배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땅콩회항’ 사건으로 2014년 12월 퇴임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은 퇴직금으로 10억여원을 받았다. 월 보수 2800여만원에 임원 근무기간 9년을 곱하고 최종 직위인 부사장 지급률 4배를 적용해 산출된 금액이다. 지급률 기준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나 대략 2(상무보)∼6(회장)배다. 하지만 상당수 회사가 이런 내부 규정을 공시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일부 기업 임원들의 퇴직금 액수가 알려진 건 2014년 처음 시행된 개별임원 보수(연간 5억원 이상) 공시제도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가 그해 공개된 퇴직급여를 분석한 결과 임원을 1년만 해도 평균 1억7500만원의 퇴직금을 받는 것으로 나왔다. 연봉 5000만원인 근로자가 40년 넘게 근속해야 받을 수 있는 퇴직금 액수다. 퇴직금이 이러하니 연봉 액수야말로 일반인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게다.
이 제도는 경영 책임성과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총수 일가들이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빛이 바랬다. 공시 대상이 등기임원이었기에 미등기임원으로 내려앉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권한은 그대로인데 법적 책임은 없어졌으니 이 또한 좋은 일 아닌가. 현재 삼성그룹은 총수 일가 중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만 등기임원이다. 이건희 아들 이재용은 미등기임원이라 연봉을 얼마 받는지 모른다. 대기업 상당수가 이런 식이다. 물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처럼 등기이사 자리를 지키는 총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 40대 대기업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등재 비율(21.7%)이 전년보다 낮아지면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계속 제기돼 왔다.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엊그제 본회의에서 보수 공개 대상자를 일부 확대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환영할 만하다. 미등기임원(또는 직원)이라 해도 보수 총액이 회사 상위 5위 안에 들 경우 공개하도록 했다. 시행은 2018년부터다. 미국이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집행임원이나 연봉 상위권에 대해 공시를 의무화한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총수 일가의 ‘황제 연봉’이 모두 드러날까. 문제는 그물망을 촘촘히 짜도 빠져나갈 구멍은 또 생긴다는 것이다. 공개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5위 아래로 연봉을 낮추는 방법이 벌써부터 회자된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편법을 강구할 수도 있다. 의심은 한이 없다. 하지만 믿어보자. SK그룹처럼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는 조치도 나오니 말이다. 지난해 8월 사면복권된 최태원 회장은 18일 SK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이사로 복귀한단다. 아울러 고위 임원 퇴직금 지급률을 최대 6배에서 4배로 낮춰 그 액수를 3분의 1(회장) 정도 줄이기로 했다니 바람직한 결단임에 틀림없다.
이런 움직임이 확산된다면 ‘반재벌 정서’도 다소 누그러질 것이다. 이번에 재계가 총수 일가 보수의 적정성을 다시 들여다보고 과도한 퇴직금 문제도 개선해나가는 계기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배구조 개선 및 합리적인 보수 시스템 정착이야말로 재벌과 국민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재계는 깨달아야 한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여의춘추-박정태] 총수일가 보수공개, 더이상 꼼수 없어야
입력 2016-03-03 17:34 수정 2016-03-03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