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변호사의 법률 속 성경 이야기] 죄와 벌

입력 2016-03-04 18:59

살인의 시간이다. 휴학생 법학도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계획대로 전당포 고리대금업자 노파 알료냐를 살해한다. 범행 후 살인의 흔적을 모두 감추었지만 양심의 가책은 숨기지 못한다. 그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린 아담이 느꼈던 두려움을 감지한다. 내면의 감옥 속으로 도망가는 주인공 뒤를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추적해온다. 판사는 주인공이 작성한 대학 논문에 주목한다.

“나폴레옹과 같은 초인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행한 살인은 정당화된다.”

논문은 불의한 자산가의 돈을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는 행동가의 출현을 요청한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살인 사실을 고백했던 대상은 창녀 소냐였다.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다. 아마도 주인공 눈에는 그녀의 모습 속에 여동생 두냐가 보였던 모양이다. 소냐가 읽어 주었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소냐에게 살인 사실을 고백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행위는 ‘죄’가 아니라 ‘초인’이 되려는 실험이라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서 아벨을 죽이고도 뻔뻔하게 변명하는 가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소냐가 그를 설득한다. “회개하세요. 뉘우침이 있는 곳에 영혼의 햇살이 비치니.” 그녀의 말대로 그는 더럽혀진 대지 위에 입 맞추고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크게 외친다. 뉘우침과 함께 7년간 시베리아 유형지로 떠난 그는 오랜 범죄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사람을 살인하고도 감추는 자는 영혼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을 말하려 했다. 작가는 ‘죄’를 짓고 자백하지 않는 자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벌’이 주어지므로 차라리 회개하고 형벌을 받아 영혼이 치유되는 길을 선택하라고 권면한다. 얼마 전 1999년 발생했던 삼례 슈퍼 살인 사실을 자백한 진범도 그 권면을 알았을까.

최근 우리 주변에 살인 소식이 범람하고 있다. 훈육을 이유로 분노를 딸에게 표출한 살인사건은 우리가 자녀를 삶아 먹은 북이스라엘의 비극 앞에 눈물짓는 예레미야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애 4:10).

법정에서 살인 사건을 다루게 되면 검사 측의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과 변호인 측의 과실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간다. 구약시대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었던 것처럼 가능하면 변호인은 피고인의 살인을 과실에 의한 범행으로 몰고 가 관대한 처벌을 받도록 힘쓴다. 개인적으로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별거 중인 처와 아들의 집을 찾아가 도끼를 휘둘러 아들의 머리를 스친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재판부에는 형법 ‘살인미수죄’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특수상해죄’로 공소장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경은 살인의 기원을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미움과 분노에서 찾는다. 소냐가 암송한 죽은 나사로 이야기를 듣고 회개한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에서 분노를 멈추게 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상흠 변호사 <동아대 법무감사실 법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