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시간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끝에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2001년 김대중정부 당시 정부안으로 처음 발의된 지 15년 만이다. 그동안 이름을 바꿔가며 거의 똑같은 내용의 법안들이 여러 번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강력히 반대했던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의원 입법안으로 발의했었고,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에 반대하기도 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찬반을 달리한 것이다.
이 법으로 국가정보원은 테러위험 인물에 대한 정보수집권과 추적권을 갖게 됐다. 개인정보·위치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금융거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신감청의 법적 근거도 확보했다. 이런 조항들 때문에 야당은 국정원이 무제한 감청을 하고 마구잡이로 개인정보와 금융거래 자료를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 허가를 얻어야만 감청을 할 수 있고, 금융 정보는 판사가 포함된 심의 절차를 거쳐야 볼 수 있으며, 추적·조사하려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대테러대책위원회에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인권침해 가능성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국정원의 수많은 전비(前非) 때문이다. 법 위에 군림하면서 정치공작을 했던 유신과 신군부 독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김영삼정부 때 권영해 국가안전기획부장은 북풍·총풍 사건으로, 김대중정부의 임동원·신건 국정원장은 불법 감청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명박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대선 개입으로 구속됐다. 이밖에 정권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각종 사건들을 일으킨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니 야당과 적지 않은 국민들까지 국정원을 불신하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의 몇몇 조항이나 인권보호관을 설치한 것만으로는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완벽하게 방지할 수는 없다. 역시 국정원장과 지휘부, 관련 부서 간부와 요원들의 철저한 법 준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견제 장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모든 추적·조사 행위는 반드시 근거와 서류를 남기고, 국회 정보위는 비공개로 정기 보고나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정밀하게 통제해야 한다. 대테러 활동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련 부서원들에 대한 외부 기관의 정기적인 점검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민 안전을 위한 테러 방지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정치적 고려도 있을 수 없다. 만약 테러방지법을 활용해 정치인 사찰과 같은 권한 남용을 한다면 이제 국정원은 아예 존립 기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비리는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국정원은 법 테두리 내에서 대테러 활동을 하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사설] 테러방지법의 인권침해 가능성 새겨들어야
입력 2016-03-03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