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초강경’ 대북제재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했다. ‘김정은 북한’의 핵심 엘리트를 겨냥한 이 제재는 1990년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2000년대 핵무기 개발 ‘고속도로’를 달리던 이란 강경파 정권의 빗장을 풀어헤친 경제봉쇄를 연상케 한다.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유엔 안보리발(發) 대북제재가 나왔지만, 상임이사국인 중·러가 이번처럼 두손 두발을 다 든 경우는 없었다. 두 나라는 북한에 관한 일이라면 사사건건 한·미의 뒷덜미를 잡았다. ‘이렇게 하자’ 하면 ‘그렇게는 못한다’거나 ‘조금 수위를 낮추자’고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이번엔 한·미가 하자고 한 대북제재를 거의 다 수용했다. 러시아가 막판에 ‘블루 텍스트(Blue Text)’를 문제 삼긴 했지만 그것도 최종 결의의 큰 틀을 깨지 못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체제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렇게 똘똘 뭉쳐 북한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왜 그랬을까. 중국의 대북 기조는 예전에도 지금도 ‘항미원조(抗美援朝)’다.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선 ‘무조건’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팍스 아메리카나’의 회오리를 막아주는 방패막이로 여겨 왔다. 그러려면 북한이 무슨 일을 벌여도 든든히 뒤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미국도 이를 감안해 중국을 자극하지 않았다. 북한이 도발을 가해와도 미국은 북한을 위협할지언정 중국만큼은 직접 자극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 역시 중국의 항미원조를 바꿔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국 지도부에 접근해 외교적 화술로 “이제 북한도 국제사회 기준에 맞는 우량 국가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메시지만 던졌다.
그랬던 한·미가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한 이후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중국 동북부를 직접 겨냥할 수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러자 ‘시진핑 중국’은 달라졌다. “절대 사드 배치는 안 된다”는 알레르기 반응을 시도 때도 없이 내놨고, 외교적 무례도 불사했다. 박근혜정부조차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똑같이 “사드 배치가 시급하다”고 하자 당황한 셈이다.
그러고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워싱턴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나 우리 정부와 미국이 사전조율한 초강경 대북제재에 모두 합의해줬다. 공식 발표는 안 됐지만 미국으로부터 사드 한반도 배치 재검토 카드를 얻어낸 듯하다.
일련의 외교적 과정을 지켜보면 현재의 중국이 10년 전, 20년 전과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를 엿볼 수 있다. 철옹성과도 같은 항미원조 기조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철옹성에 금을 낸 데는 우리 정부의 친중(親中) 외교도 한몫을 했다. 박근혜정부는 김정은정권보다 더 중국과 친해지고서도 중국의 치부를 건드릴 줄 알게 됐다. 안보에선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에 발을 붙이고, 동북아 정세 변화엔 친중 노선으로 대처하는 방법. 모순처럼 보였던 외교적 테제가 위력을 발휘했다.
대북제재 결의를 둘러싼 외교전의 최대 패배자는 중국이다. 이제 자신들이 내디딘 발걸음을 뒤로 물리진 못한다. 북한이 핵 개발에 더 열을 올릴수록 중국은 항미원조 원칙을 유지할지 여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꼭 지켜야 할 대마(大馬)를 위해 나머지 졸(卒)을 양보해야 하는 장기판과도 같다. 이제 북한은 중국의 형제가 아니라 졸이 될 운명에 처했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
[세상만사-신창호] 사드가 바꾼 중국의 抗美援朝
입력 2016-03-03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