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탄자니아의 섬을 여행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장기여행 중이라는 외국인이 한국을 좋아한다며 적극적인 호감을 표해 왔는데 뜻밖에 제주도 얘기를 꺼내는 거였다. 아프리카에서 노랑머리 제주 ‘덕후’를 만나다니 신기한 건 내 쪽이었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뻔한 관광코스가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지형이 경이로운 수준이었고 사람들의 풍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제주의 풍습? 뭘 본 걸까.
‘제주 들불축제’ 얘기였다. 제주의 독특한 지형과 오랜 풍습이 뒤섞인 특별한 불 축제가 여행자에게는 진짜 제주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것 같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에다 불을 지른다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자세한 축제 이야기를 듣고 나선 제주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부끄럽게도 축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조차 제주의 아름다운 들불축제를 뒤늦게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 축제는 원래 제주정월대보름들불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치러오던 의식이었다. 말과 소를 방목하며 살아온 제주의 목축문화에서 해묵은 풀을 태우고 쥐와 해충의 알을 없애기 위해 산 여기저기에 불을 놓던 풍습에서 유래했다. 축제의 포인트는 ‘의도된 산불’이라는 점이다. 해외에서도 농경지역에서 크고 작은 불 놓기는 심심찮게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제주 들불축제만의 차별성은 가히 독보적이다. 화산지대에 불놀이라니, 그것도 논밭이 아닌 산 위에서 말 키우던 이야기까지 얼마나 신기하고 흥미로운 구성인가.
억지스러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할 리 만무하다. 기후변화에 맞춰 2013년부터 대보름(1월)을 떼고 경칩(3월)이 낀 주말로 축제를 옮긴 과정도 훗날 지역성이 반영된 축제의 또 다른 얘깃거리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올해의 축제가 이번 주말에 열린다. 전시성에 설익은 명분으로 급조하기 바쁜 많은 지역축제들이 스스로의 문화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제주 들불축제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유경숙(세계축제연구소 소장)
[축제와 축제 사이] <10> 제주 들불축제
입력 2016-03-03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