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로 때늦은 눈이 세차게 날리던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역.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며 선행 실천을 약속받아 ‘약속 청년’으로 세간에 이름을 알린 송재한(36) 이름없는학교 대표를 만났다. 전주가 터전인 송 대표는 영등포역에서 열리는 지인의 거리공연 겸 나눔 행사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에 들렀다고 했다. 그의 손에는 ‘프리 포토(Free Photo) 나눔을 약속해 주세요’라고 적힌 골판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거리로 나가 카메라 앵글에 다양한 사람의 표정을 무료로 찍어 인화해준다. 대신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등의 한 가지 약속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왜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느냐고요. 그럼 전 ‘예수 믿어서 이렇게 한다’고 답해요. 예수님 흉내내는 거라고요. 예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나보다 남을 귀하게 여겨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살면 주변 사람들이 최소한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사진작가인 송 대표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2005년 상경한 그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프리랜서 촬영감독으로 7년간 일했다. 6개월치 급여가 50만원일 정도로 박봉인지라 빚을 내야만 생활이 가능했다. 한두 달씩 월세가 밀리고, 동료와 후배의 딱한 사정을 도우면서 빚이 불어나 잠시 꿈을 접고 전주로 돌아갔다. 지역 방송국에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빚을 청산해 이전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됐다. 그때 송 대표는 서울에서 고생하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나만 편해도 되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매년 한 명씩 어려운 친구의 꿈을 찾아주자’는 목표로 2012년 회사를 그만두고 판자촌 근처에 작은 카페와 사진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그가 외진 곳에 카페를 세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손가정 등 소외계층의 어린이·청소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판잣집이 즐비한 마을에 화사한 카페가 문을 열자 동네 아이들은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 송 대표는 카페로 찾아온 아이들에게 음료를 주며 꿈을 물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는 아이들에게 진로를 찾아주기 위해 카페에 학교를 만들었다. 이른바 ‘이름없는학교’의 시작이었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자유롭게 재능을 나눌 수 있지만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학교 이름을 지었다.
“이름없는학교는 우리 학생이 취업해 얼마나 일 잘하고 오래 버티는지에 관심을 둬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문가를 소개해주고 현장에서 일하게 합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요리사를 소개해주고 직접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하는 식이죠. 현재 전주본교에 40여명, 서울분교에 6명이 자원봉사 교사들과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송 대표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한 무료 사진 나눔 행사는 학교 설립 뒤인 2013년부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많은 사람 앞에서 고개조차 제대로 못 들었지만 이젠 제법 익숙해져 서울 광화문, 홍대 등에서도 나눔 약속을 실행하고 있다. 나갈 때마다 사진 120장을 찍고 인화한다. 그는 나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프리 커트(Free Cut)’란 골판지를 들고 자신을 찾아온 한 청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울에서 만난 이들은 그날 서울역 노숙인 사역 단체에서 무료 사진·이용 봉사를 함께 펼쳤다.
송 대표는 ‘N포세대’를 돕는 비영리 단체 ‘청년들’의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 등 지역 청년의 어려움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게 이 단체의 주된 업무다. 그는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신앙이 아니다’란 확신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악에 침묵하는 건 큰 죄라고 생각해요. 약자 편에, 더 낮은 곳으로 가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에요. 여력만 되면 노숙인 등 가난한 분들 곁에 오래 머물며 도울 겁니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약자 편에 서서 행동하는 믿음을 펼치는 데 뜻을 같이했으면 합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거리의 사진작가, 나눔을 전하다… 선행 약속하면 무료로 사진 찍어주는 ‘약속 청년’ 송재한씨
입력 2016-03-04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