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앞둔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상담실에 찾아왔다. 꽤 성적이 좋은 아이였는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도 책이 잘 읽히지 않아 극도의 자괴감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담을 진행하며 아이의 스케줄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공부 스케줄을 시간 단위로 철저히 계획하고, 매일의 계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과 실행, 반성과 수정을 스스로 실천하는 자기주도형 학생이었다.
문제는 계획대로 실행치 못한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스스로에게 철저한 것을 넘어 계획을 완수하지 못한 자신을 징계하는 데 너무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아무리 적절한 계획을 세워도 갑자기 일이 생길 수 있고, 생각보다 공부가 잘 안 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에겐 그 모든 것이 핑계일 뿐이었다. 특히 지난 시험에서 문제를 잘못 보는 바람에 저지른 실수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자면 이 아이는 실수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 징계하느라 지금의 공부에 집중할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상담학에서 말하는 건강한 심리적 특성 중 ‘자기용서(Self-forgiveness)’란 개념이 있다. 자기용서는 자신의 객관적 잘못이나 실수,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실패를 직면할 때 생기는 분노, 아쉬움, 자괴감을 간직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란 긍정적 생각으로 바꾸는 의지를 갖는 게 바로 자기용서다. 이 심리적 특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나 주변사람이 실수, 실패에 대해 보였던 반응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해 평생을 살아갈 심리적 자원으로 삼는다.
자수성가한 부모님을 보며 ‘실수에서 뭔가를 배우려면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따끔하게 혼나야 한다’는 게 아이의 생각이었다.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란 자기용서의 말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아이의 증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우리 모두가 경험했듯 실수 자체를 자꾸 지적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지적받으면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되고, 긴장할수록 실수를 반복할 확률은 높아진다. 이러한 태도는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 아이가 자신의 진정한 욕구나 바람을 상실케 하는 부작용을 빚는다.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사랑해” “괜찮아”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아이들은 실수에 대한 너그러움과 넉넉함, 자기용서와 자기위로의 모델을 필요로 한다. 먼저 부모가 스스로에게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 하는 자기용서를 실행해보자. 그것이 ‘이미 우리 죄를 모조리 용서하고, 심지어 잊어버리시는 주님’(사 43:25)을 닮아가는 것 아닐까.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
입력 2016-03-04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