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고전 소설 ‘황금 노트북’으로 200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여성 작가 도리스 레싱(1919∼2013·사진)의 단편집이다. 표제작은 앤 폰테인 감독이 메가폰을 쥔 ‘투 마더스’(2013년 국내 개봉)의 원작소설이다.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꼭 붙어 다녔던, 어릴 적 단짝 친구 로즈와 릴. 둘은 결혼해서도 이웃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혼(로즈)과 사별(릴) 등의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할머니로 서서히 늙어가는, 외견상 평범해 보이는 여자의 일생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상조차 못할 관계의 비밀이 숨어 있다. 로즈와 릴에게는 각각 톰과 이안이라는 멋진 아들이 있다. 두 아들이 자라서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친구의 어머니에게 연정을 품는다. 아버지의 부재가 또 다른 모성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 것이었을까. 그러나 결국 톰과 이안은 또래의 젊은 여성들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로즈와 릴은 기꺼이 손주를 봐주는 할머니이길 자처한다. 그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안간힘을 썼어. 릴하고 나.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사랑보다는 모성을 택하기까지 겪었을 삶의 고통이 로즈가 뱉은 이 말에 함축돼 있다. 그래서 ‘투 마더스’보다는 원제 ‘그랜드마더스’가 훨씬 주제에 가까운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은 톰의 아내가 남편이 과거 어머니뻘 되는 릴과 주고받은 연서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난다. 금기를 깬 사랑의 대가를 어떤 식으로 치르는지에 대해서는 언급 없다. 열린 구조의 결말이다.
레싱은 “작가의 일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게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런 작가의 신념은 다른 단편에서도 드러난다.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家)’는 흑인 고아 소녀 빅토리아와 백인 중산층 가정 스테이브니 가족을 교차시키면서 백인 중산층의 편견을 드러내지만, 마찬가지의 이중성이 빅토리아에게도 있음을 꼬집는다. ‘러브 차일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영국 군인 제임스의 사랑과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매번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 한국 사회에서 연애하려면 ‘캐리비안베이 인증샷’은 필수라고 한다. 가벼워지고 과시하려는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랑의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강수정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서로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두 여인
입력 2016-03-03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