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단위도 같은 피규어 값… “담합 아니냐” 키덜트 화났다

입력 2016-03-03 04:16

지난달 25일 피규어(사람·동물 등을 본떠 관절이 움직이게 만든 모형 장난감) 쇼핑몰 ‘피규어킹’ 운영자 김모(46)씨가 구속되자 ‘키덜트’(kid+adult·아이 같은 취향을 가진 어른) 피해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중가보다 30% 싸게 판다는 게 의심스러웠지만 연매출 8억∼9억원의 업계 3위 쇼핑몰이라 믿었다고 한다. 김씨는 2013년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구매 예약을 받으면서 돈만 가로채고 상품은 보내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챙긴 돈은 17억4000만원, 피해자는 1655명이나 된다.

이 많은 사람이 김씨에게 당한 배경에는 국내 쇼핑몰들이 가격 경쟁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제품마다 너나없이 똑같은 가격표를 붙여놓은 시장 상황이 있다. 해외보다 비싼 국내 피규어 가격은 100원 단위까지 일치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소비자들은 ‘파격 할인’에 현혹되곤 한다.

적잖은 소비자가 피규어 수입업체 간 가격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입부터 배송·보관까지 단계별 비용이 업체마다 다를 텐데 판매가가 이렇게 하나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업체가 피규어마다 같은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9월 발매 예정인 ‘아이언맨’ 피규어의 예약판매가는 국내 모든 쇼핑몰에서 10만1400원이다. 11월 나오는 ‘스타워즈 캐릭터’ 피규어는 11만7600원에 판다. 일본 아마존에서 두 상품은 각각 그보다 싼 8424엔(약 8만4200원), 1만584엔(약 10만5800원)에 예약판매를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 소비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인기 피규어 가격이 제조사와 캐릭터별로 대부분 동일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부당공동행위(가격담합)가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영화 ‘어벤저스 2’에 등장하는 헐크버스터 피규어는 86만8000원,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레이너 피규어는 68만9000원 등 쇼핑몰 10곳의 가격이 전부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2일 “담합 조사를 하고 있는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피규어산업 자체가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규어를 수집하는 직장인 A씨(38)는 “피규어를 포함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가 7000억원대에 이르지만 관리·감독은 소홀한 것 같다”며 “정말 담합이 있는 건지 적절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피규어킹’에 속은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 모임 인터넷 카페는 회원 400명을 넘겼다. 이들은 피해액 일부라도 돌려받자며 증거 자료를 모으고 있다. 소송 대리를 맡은 변호사는 “현재 피해자 100여명이 집단소송에 참여했다”며 “이들의 피해액은 3억원가량인데 전부를 받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합의하면 일정 정도는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