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제대혈 줄기세포를 불법 제조·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산모들로부터 기증·위탁받은 제대혈을 허가받거나 신고하지 않고 마음대로 배양했다. 치료 효과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들에게 이식했다. 미용 목적의 ‘항노화’ 시술에도 쓰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제대혈 줄기세포 1만5000유닛을 제조하고 그 일부를 팔아넘긴 혐의(제대혈 관리·연구법 위반 등)로 제대혈은행 H사의 전 대표 한모(59)씨 등 3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S사 대표 이모(56)씨 등 유통업체 관계자 11명과 환자들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한 의사 15명이 포함됐다.
◇제조∼유통∼이식, 온통 ‘불법’=한씨는 제대혈은행 H사를 운영하며 2003년부터 2011년 4월까지 제대혈에서 1만5000유닛의 줄기세포를 분리배양했다. 질소탱크에 보관하던 제대혈 줄기세포 중 4648유닛을 2009년 1월∼2014년 7월 유닛당 100만원가량 받고 유통업체, 병·의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46억원가량을 챙겼다.
제대혈은행이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치료제로 배양하는 것은 불법이다. 연골치료제를 만드는 제대혈은행 1곳, 연구 목적으로 허가받은 병원에서만 분리배양을 할 수 있다.
한씨에게 줄기세포를 사들인 유통업체 11곳은 시술 한 번에 줄기세포 유닛 3개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유닛당 100만∼200만원을 받고 병·의원에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이식받을 환자를 알선해주고 추가 이익을 얻기도 했다.
적발된 13곳 병·의원에서는 한 번 시술에 2000만∼3000만원을 받고 환자들에게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식해줬다. 경남 창원 M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김모(50)씨는 H사로부터 직접 제대혈 줄기세포를 구입했다. 유닛당 100만원에 65유닛을 사들였다. 그는 당뇨, 아토피, 척추손상 등의 환자에게 한 번에 약 2000만원을 받고 이식했다.
제대혈 관련법은 2011년 7월에야 시행됐다. 그 전에는 제대혈 분리배양만 불법이었다. 경찰은 2009년 1월부터 법 시행 이전까지 분리배양한 제대혈 줄기세포를 유통·이식한 데 대해서는 보건범죄단속특별법을 적용했다. 현재 시행 중인 제대혈법에선 영리 목적의 제대혈과 그 부산물의 매매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이식받는 것도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이식할 수 있는 곳은 인제대 부속 부산백병원 등 46곳으로 한정돼 있다.
◇미용 목적으로 이식하기도=경찰은 H사의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식한 환자가 1000여명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루게릭병이나 각종 암 등 난치병 환자다.
다만 일부는 노화 방지(안티에이징) 등 미용을 위해 줄기세포를 이식받기도 했다. 한 명이 여러 번 이식받기도 해 정확한 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한 번에 1억5000만원 상당을 미리 결제해 놓고, 4∼6차례에 나눠 이식받은 사례도 있다. 경찰에선 전체 이식환자 가운데 10%가량이 미용 목적이었다고 추정한다.
H사에서 만든 제대혈 줄기세포는 과학적으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식받은 환자 중 부작용을 호소한 이들은 없지만 효과가 없었다는 반응이 다수였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기증·위탁 받은 제대혈로 ‘불법 줄기세포’ 돈벌이
입력 2016-03-02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