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호남은 지금 왜 동요하는가…야당 분열·친노 문제 등 진단한 책 두 권 총선 앞두고 출간

입력 2016-03-04 04:00
강준만 전북대 교수(왼쪽)가 20여년 만에 다시 호남 얘기를 들고 나왔다. 강 교수의 신작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은 지난해 12월 출간된 김욱 서남대 교수(오른쪽)의 문제작 ‘아주 낯선 상식’과 함께 지금 호남 민심이 왜 동요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호남 민심은 이번 총선의 핵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선전할지 추락할지는 호남에 달렸다. 국민의당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호남에서 판가름 난다. 호남은 이번에도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

호남은 과거 90% 안팎의 표를 더민주에 몰아줬다. 더민주는 이 몰표를 기반으로 2당 자리를 유지해 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남 분위기가 좀 다르다. 더민주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호남의 지역주의, 호남 정치 엘리트들의 구태 정도로 비난하고 말면 되는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벌이는 내분 사태의 주요 원인은 문재인·안철수의 문제라기보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분열이다. 언론은 ‘호남 민심’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호남은 노무현 시대 이후 더 이상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견해가 같은 과거의 호남이 아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신간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인물과사상사)에서 호남 문제를 다룬다. 1995년 출간된 ‘김대중 죽이기’와 ‘전라도 죽이기’ 이후 20여년 만에 다시 호남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다.

하나로 뭉쳐도 이기기 어려운 선거라는데 친노와 비노로,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갈려 싸우는 현재의 야권 상황을 이해하는데 ‘호남의 고민’ 혹은 ‘호남의 동요’라는 포인트는 매우 중요해 보인다. 책에는 ‘야당분열, 알고나 욕합시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강준만에 따르면, 야당 분열은 호남의 분열 때문이다. 그리고 호남의 분열은 야당을 주도하는 ‘친노’ 세력이 자초하고 있다. 호남을 인질로 잡고 선거에서 이용한 뒤 선거가 끝나면 호남에 모멸을 주는 상황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호남 몰표는 ‘주머니 속의 공깃돌’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바로 그 호남 몰표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니들은 죽은 듯이 입 닫고 지내라’고 강요하면서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작태, 이게 바로 그들의 민낯이다. 호남인들이 이젠 못 참겠다고 들고 일어섰더니, ‘민중’이니 ‘국민’이니 ‘진보’니 하는 거대 레토릭을 써가면서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댄다. 이런 ‘싸가지 없는 진보’를 언제까지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강준만의 이런 주장은 지난해 12월 출간된 김욱 서남대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과 궤를 같이 한다. 호남이 느끼는 상실감과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에 대해 강준만은 “호남을 넘어서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딜레마를 제대로 건드렸다”고 평가했고, 작가 고종석은 “지난해 한국에서 나온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 서너 권 안에 꼽힐 만하다”는 독후감을 남겼다.

“현재 더민주의 분열상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호남·‘새누리당에 참여하지 않은 영남세력’의 분열이다. 이 현상은 결코 우연한 내분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의 뿌리 깊은 족보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숙명적 연대 분열이다.”

김욱은 과거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민주당과 꼬마민주당의 분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열 등을 거론하며 야권 분열의 오랜 역사 속에 내재한 은밀한 감정 하나를 폭로한다. ‘영남패권주의’가 그것이다.

김욱은 한국을 “영남인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호남인들을 차별·배제하는 전략을 통해 경제적 지배관계를 확대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관계에 대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영남패권주의 사회로 규정한다. 반면 ‘광주 정신’의 고갱이를 민주나 진보 대신 반영남패권주의로 해석하면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호남 민심을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김욱은 “노무현 집권 이후 영남패권주의가 개혁·진보진영의 사고까지 지배하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반영남패권주의라는 호남 이데올로기의 위기가 바로 호남이 동요하는 이유라고 분석한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호남몰표로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

김욱은 “욕망을 거세당한 채 ‘신성 광주’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잃어버린 욕망을 찾아 ‘세속 광주’를 회복해야 하는가?”로 호남의 고민을 압축하면서, “‘분열하면 진다’는 주장이 ‘호남은 세속적 이익과 무관하게 지역단위 전체가 새누리당이라는 절대악에 맞서야 할 의무로만 더민주에 투표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주장은 호남의 욕망을 거세하는 부도덕한 정치적 선전구호일 뿐이다”라고 비판한다.

두 책이 전하는 호남의 고민은 비호남인들은 잘 모르거나 동의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호남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대한 분기점이 될 선택 앞에 서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