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박정원 체제로… 연료전지 진출 지휘한 승부사 두산그룹 구원투수 될까

입력 2016-03-02 21:06

형제경영 전통을 유지해 온 두산그룹이 4세 경영시대를 열게 됐다. 그룹 회장직을 승계하는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이 국내 주요 대기업 중에선 처음으로 총수 자리를 맡는 4세 경영인이 될 전망이다. 재계는 박 회장이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총수 일가가 돌아가면서 그룹을 이끄는 경영에 익숙한 두산그룹은 박 회장의 승계가 준비된 수순이라는 분위기다. 그룹 관계자는 2일 “앞서 형제경영 체제처럼 그룹을 맡았던 회장이 다음 후임에게 자연스럽게 승계한 것”이라며 “4년 동안 경영을 이끈 박용만 현 회장은 이번이 승계하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도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박정원 회장을 천거하면서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승계 배경을 설명했다.

1896년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한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형제의 난’까지 겪었던 3세 경영시대의 막을 내리게 됐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형제경영과 장자상속의 두 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승계했다. 박두병 초대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회장까지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그룹을 맡았다.

재계 일각에서는 박용만 회장의 사퇴와 박정원 회장의 승계를 두산 주요 계열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 두산건설 등은 지난해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세대교체를 통해 총수가 바뀌면서 두산그룹이 새 도약의 계기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두산그룹 측은 경영권 승계가 박용만 회장 개인의 판단이라고 선을 그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실제로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은 이미 두산그룹을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로 꾸준히 꼽혀왔다. 박 회장은 두산 일가를 통틀어 지주회사인 ㈜두산의 지분도 6.29%로 가장 많다. 박용만 회장이 3.65%, 박정원 회장의 친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4.19%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또 박정원 회장은 2007년 ㈜두산 부회장, 2012년 ㈜두산 회장을 맡으면서 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결정 과정을 주도했다. 특히 2014년 연료전지 사업, 2015년 면세점 사업 진출 등 그룹이 신성장동력을 찾는 작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연료전지 사업의 경우 2년 만에 5870억원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재계는 박정원 회장의 승부수 기질에도 주목하고 있다.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두산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했고, 취임 이듬해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렸다.

박정원 회장은 평소 남다른 야구사랑으로도 유명하다. 2009년 두산건설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두산 베어스의 구단주도 맡아 현장을 직접 챙겨왔다. 지난달 24일 일본 미야자키 아이비구장을 찾은 자리에서는 더그아웃으로 직접 내려가 선수들을 일일이 격려하고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역량 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하는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 베어스의 전통에는 인재 발굴과 육성을 중요시하는 박정원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돼 있다”고 전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