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집회 찾은 교계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울겠습니다”

입력 2016-03-02 20:58
예장통합 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2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말없이 앉아 있지만 수많은 말보다 더 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참된 평화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일본이 볼 때는 양심을 찌르는 송곳 같고, 눈엣가시 같아서 (소녀상을) 치워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고, 세계 곳곳엔 더 많은 소녀상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2일 정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올 정도의 추위에도 그의 목소리엔 떨림이 없었다. 채 목사는 “온힘으로 하나 돼서 역사를 바로 세워가는 일에 우리 교단도 함께 하겠다”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전했다. 이날 예장통합은 ‘일본군 위안부 정의의 기억 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을 전달했다.

예장통합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매주 열고 있는 정기 수요집회를 주관했다. 교복차림의 여고생, 백발노인, 주부 등 100명 가까운 참가자들이 ‘12월 28일 한·일합의 무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정의를’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소녀상 주변에 앉았다. 예장통합과 NCCK는 성명서를 통해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는 그날까지 피해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선언했다.

NCCK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의 김봉은(안양 빛된교회) 목사는 자작 추모시를 읊었다. ‘아직 당신의 가슴은/ 봄이 필요하군요/ 그 마음 전쟁의 광기에서/ 어찌 데리고 나와야 할까요/ 그대여, 내 손을 잡고 봄으로 가요.’ 김 목사가 시를 읊는 동안 일부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참가자들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철회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수년간 몸이 불편해 이곳에 나오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12월 28일 이후 다시 거리에 나와 앉으셨다”며 “우리가 요구하는 건 밥을 달라거나 옷을 입혀달라는 게 아니라 역사의 진실과 진정한 사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후 참가자들은 일본대사관에서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여전도회관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걸으며 평화행진을 했다.

여전도회관에서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기억투쟁’ 포럼이 이어졌다. 양현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사적 성찰과 반성’을 발표했다. 양 교수는 “한국교회는 극악한 전쟁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신앙적 응답이자 실천의 문제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신앙 좋은 교인’과 사회적 공공성을 자각하는 ‘좋은 시민’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이 시민적 공공성, 책임의식, 연대성을 깨우는 시민교육과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