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9일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정국을 주도하며 야당 중진으로서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필리버스터 중단을 요구하자 결국 수용하는 등 한순간에 당내 입지는 더욱 좁아진 모양새다.
이 원내대표는 2일 마지막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서 “제가 잘못 판단해서 (필리버스터 중단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죽을죄를 지었다. 용서해줄 때까지 버티겠다”고 했다. 당초 그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수정을 주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 대표가 “선거 망치면 책임질 거냐”며 필리버스터 중단을 강하게 요구하자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내대표는 자신에게 주어진 필리버스터 시간에 울먹이며 발언을 이어가는 등 마지막까지 비대위의 중단 결정에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이 원내대표는 4선 의원으로서의 정치적 입지를 높였다는 평가다. 지난해 야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고, 예산안과 쟁점법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에서도 얻은 게 없다고 비판받는 상황에서 이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정국을 지휘하며 제1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특히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필리버스터를 응원하는 게시물이 쏟아져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외신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다만 이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강행 의지가 비대위와의 갈등 끝에 꺾인 만큼 당내 입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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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존재감 높였지만 입지는 좁아져… 9일간 필리버스터 정국 주도
입력 2016-03-02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