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하는 다단계 하청사업장 파견근로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하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2월 4일 인천에서의 메탄올 중독 실명사고 후 전국 휴대전화 부품업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 점검이 펼쳐지던 중인 2월 17일 경기 부천에서 또 중독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들 사고로 4명의 파견근로자들이 현재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알루미늄 절삭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용도로 사용했던 100% 메탄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구조차 착용하지 않은 채 근무해 왔음이 확인됐다. 인천 남동공단에서의 중독사고는 근로감독관이 지도점검 과정에서 메탄올의 위험성을 알렸는데도 사업주가 이를 무시한 채 안전보건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서 더 충격적이다.
메탄올은 투명·무색의 인화성 액체로 고농도에 노출될 경우 중추신경계 장해뿐만 아니라 실명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이번 중독 사고가 빚어진 사업장들은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대상 사업장인데도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고교 교과서에도 위험물질로 소개되는 메탄올의 경우 간혹 에탄올로 오인 섭취해 중독 사고가 나곤 했다. 그러나 고농도 흡입으로 실명사고가 발생한 것은 보건관리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매우 드문 사건이다.
2015년 4∼5월 광주 남영전구에서 빚어진 수은중독 사고도 다단계 하청시스템과 파견근로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의 산재 위험을 부각시켰다. 이번 메탄올 중독도 생계에 쫓겨 소규모 사업장에 채용된 근로자들이 어떻게 유해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규모 사업장의 직업보건관리 실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현행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에는 파견이 금지되어 있으나, 다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경우 6개월에 한해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다. 원청기업이 이런 예외조항을 악용하여 유해한 물질을 취급하는 위험업무까지 외주화한 것이 이 사건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이다.
정부는 다단계 하청과 파견근로로 인해 직업보건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확대돼 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원·하청 간 직업보건적 문제점에 대해 원청사업주에게 보다 확실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칙을 강화하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안전 조치를 위반한 경우 원청업체도 협력업체와 같은 수준으로 처벌수위를 높이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원청 대기업들은 로펌 등의 도움을 받아 대개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처벌조항의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파견근로자와 사내하청을 포함한 모든 단계의 하청업체가 참여하는 상생 안전협력 프로그램을 의무화하고 더 많은 업종에 적용해야 한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주로 건강증진)를 위해서 그동안 확대해 온 ‘근로자건강센터’와 같은 인프라를 보다 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보건 사업의 중심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센터들은 유해물질 중독과 같은 직업병 예방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직업보건 이슈들에 대응해 나가도록 한다. 이를 위해 직업·환경의학전문의들을 센터에 적극적으로 고용함으로써 위험 사업장에 대한 사전점검과 관리활동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정부 지원으로 시행중인 소규모 사업장 특수건강진단 및 작업환경측정 비용부담사업(제3자 지불제도)의 대상과 재원규모의 대폭 확대 등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임종한(인하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
[시사풍향계-임종한] 소규모 사업장 산재 예방하려면
입력 2016-03-02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