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40일간 이어지는 절기입니다. 성경에서 40은 주로 고난과 시련, 인내를 표현하는 숫자입니다. 노아 홍수 때 40일 밤낮 비가 내렸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경건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얼마 전 바울의 여정에 따라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공중에 떠 있는’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그리스의 메테오라입니다. 아찔하게 솟아있는 암벽들이 즐비하고 그 위에는 수도원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10세기 무렵 이곳에는 동굴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후 많은 수도원이 들어서면서 16세기쯤엔 20여곳의 수도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수도원 5곳과 수녀원 1곳이 있습니다. 새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에 수도사들은 밧줄을 타고 올랐다고 합니다.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병원과 요양원도 있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왜 이리도 험준한 곳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비잔틴 제국이 쇠퇴하면서 적대 세력인 투르크족의 침략이 거세졌고, 지속적으로 수도원을 공격해왔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립되고 안전한 곳을 찾은 것입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곳은 갑바도기아의 괴뢰메 동굴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왔다가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오기까지 약 300년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지하 12층에 55개의 통로가 미로처럼 얽혀져 있어 출입구를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박해자들이 들어오면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동굴마다 교회가 있고 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비롯한 여러 성경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이 벽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다음 세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교회 바닥에는 해골들이 있었습니다. 박해 가운데도 주님 오실 날을 소망하며 성도들의 시신을 묻었던 것입니다.
왜 이들이 메테오라, 갑바도기아 같은 곳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뎠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요한은 스스로를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밧모섬에서 주님의 환난에 동참하는 순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이 요한의 밧모섬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 ‘나의 신앙의 자리에는 밧모섬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차오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도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불편하고 힘들어도 믿음이 쉬이 흔들리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봅니다. 특별히 주님 가신 길을 묵상하며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사순절 기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도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순례자가 되길 바랍니다.
김한호 춘천 동부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순례의 길
입력 2016-03-02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