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던 더불어민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열차’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급정거시켰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를 더 끌고 가길 원했지만 김 대표가 “선거법이 국회로 넘어왔을 때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중단을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1일 “지난 28일 비대위 간담회에서도 29일까지만 필리버스터를 하기로 했는데, 이 원내대표가 중단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김 대표가 화를 내며 중단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선거 망치면 책임질 거냐”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전날 심야까지 국회에 남아 있었던 것도 이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후문이다.
더민주 비대위원 사이에서는 애초부터 ‘2월 29일’이 필리버스터 마지노선이라는 공감대가 퍼져 있었다고 한다.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온 ‘분기점’을 놓치고 필리버스터를 끌고 갈 경우 이후에는 마땅한 출구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가 예상 외로 호응을 받자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라도 좀 더 끌고 가길 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내대표는 29일 밤 기자들과 만나서도 “항해에는 항상 역풍이 있다. 그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는 게 정치”라고 말할 정도로 필리버스터 유지 의사가 분명했다.
그러나 비대위는 29일 심야에 전격적으로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을 내렸다. 무엇보다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또 선거법 처리를 연기할 경우 민심의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에서는 8일간의 필리버스터로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이 알려질 만큼 알려졌기 때문에 선거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필리버스터가 다른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경우 더민주가 내세운 공천 혁신과 정책 공약 등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제는 선거 관련해서 현역 교체 요구가 높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들을 충원하겠다”며 “또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 양극화 문제, 민생 파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여당이 테러방지법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에서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끌고 가더라도 실질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오히려 4월 총선에서 승리해 테러방지법을 수정하도록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현실적 접근이라는 것이다. 박영선 비대위원이 이날 필리버스터에 나서 “더민주 비대위가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계시다는 것 잘 안다. 저에게 분노의 화살을 쏴 달라”면서도 “분노하신 만큼 4월 13일 총선에서 (야당을) 찍어주십시오. 야당에 과반 의석을 주셔야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울먹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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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01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