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부모, 생이별한 어린 남매… 우울증 심해서, 직장 때문에 서로 “못 키우겠다”

입력 2016-03-02 04:01

회사원 A씨는 지인 소개로 남편 B씨를 만나 2009년 결혼했다. 아들과 딸을 낳았는데 맞벌이 부부여서 양육이 어려웠다. 유치원생 딸은 자영업자인 친정 부모에게, 아들은 임대업을 하는 시부모에게 맡겼다. 딸은 부부가 퇴근 후 집에 데려가곤 했지만, 아들은 평일 내내 시부모가 돌봤다.

결혼생활은 부부 갈등으로 5년 만에 삐걱거렸다. A씨는 2014년 6월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친정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이어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부부는 이혼에 동의했지만 아이들을 누가 키울 것인가를 두고 부딪쳤다. 서로 아이들을 키우기 어렵다고 맞섰다. 서로 양육권을 갖겠다고 다투는 통상적인 이혼법정 모습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A씨는 법원 조사에서 “우울증과 불면증 등 각종 질병으로 치료 중이라 아이들을 챙기기 어렵다”며 “양육비를 많이 받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친정 부모는 A씨 외할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이사할 계획이어서 더 이상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실제 법원 면접관찰에서도 A씨는 무기력한 상태로 아이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등 정서적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B씨는 직장에서 외근과 출장이 잦아 양육이 어렵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울 경우 시설에 맡기고 주말에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B씨 부모 역시 아이들을 돌볼 뜻이 없었다. B씨 부모는 “지금까지 둘이 잘 살아보라고 애들을 돌봐준 건데, 둘의 이혼 문제로 우리가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또 “손자가 길에 누워서 울고 아무에게나 엄마라고 달려들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 계속 돌보라고 하면 고아원에 보내든지…. 더 이상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남매는 같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 하고 있다. 아직 열 살도 안 된 미취학 아이들이 떨어져 자랄 경우 정서적 유대감이 결핍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 양육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라 뾰족한 수는 없었다. 부산가정법원 이미정 판사는 딸은 A씨가, 아들은 B씨가 각각 양육하라고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이 판사는 “조부모들을 포함한 양육환경을 비교해도 어느 쪽이 월등히 낫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양육비는 전액을 각자 부담하라”고 했다.

남매는 부모의 면접교섭을 통해 매달 두 차례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다음 날 오후 7시까지 만날 수 있다. 부모가 상대방의 거주지에서 아이를 데려온 뒤 다음 날 다시 데려다주는 방식이다. 여름·겨울 방학에는 각각 5일간, 설날·추석 연휴에는 각각 2일간 만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면접교섭은 적어도 성년이 될 때까지 유지된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