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여경(女警)은 근무복 외투를 벗어서 고개를 푹 숙인 여성에게 입혀주고 있었다. 그는 광주의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8일 이 여경이 “정신장애 여성이 티셔츠만 입고 거리를 헤맨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옷부터 챙겨줬다며 사진을 한 언론에 제공했다. 추운 겨울 시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훈훈하다는 댓글이 이어지며 화제가 됐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저 사진은 도대체 누가 찍은 거지?’
정답은 ‘동료 경찰’이다. 112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보통 2인1조로 현장에 간다. 이 여경은 신입이어서 선임자 2명과 함께 출동했다. 여경의 선행 장면을 함께 간 경찰들이 촬영해 언론에 배포한 것이다. 지구대 관계자는 “지구대별로 매일 메신저를 통해 성과나 선행 사진을 상부에 알리고 있다”며 “관할서 간부들이 보고 이거다 싶은 경우 언론에 배포하거나 즉시 표창할 때도 많다”고 했다.
이런 ‘홍보 마인드’는 때때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출동 때 카메라부터 챙기는 건 이미 예사로운 일이 됐다. 자살기도자 구조나 화재 대처 등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진 촬영은 필수로 여겨진다. 홍보 실적 경쟁에 성과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불이 나도 카메라부터
지난해 12월 29일 독거노인 이모(73)씨가 혼자 살던 충북 옥천군 단독주택에서 불이 났다. 인근 파출소에서 A경위 등 2명이 현장에 달려갔다. 이씨는 바지에 불이 붙은 것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경찰은 노인을 집 밖으로 대피시켰다. 보일러실엔 여전히 불길이 가득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촬영’이 진행됐다. A경위가 소화기로 불 끄는 모습을 다른 한 명이 찍은 것이다.
서울의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 B씨는 “출동 때는 항상 카메라를 챙기거나 휴대전화 배터리를 꼭 확인한다”고 했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 술 취한 사람이 길을 잃고 헤맨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좋은 거리’가 된다. 명절을 맞아 독거노인을 방문하거나 백혈병 환자를 위해 헌혈하는 모습 등도 포함된다. B씨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신입 여경을 선행의 주체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홍보 실적 평가에 목매는 경찰
경찰이 이렇게 홍보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상여금 지급이나 인사평가의 기준으로 쓰이는 ‘치안종합성과평가’에서 홍보 실적 평가가 가장 큰 비중을 갖기 때문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3∼2015년 치안종합성과평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찰청 개인성과지표 중 ‘치안정책 홍보 실적 평가’ 항목이 가장 높은 비중인 7%를 차지했다. 2013·2014년에는 2%였는데 지난해 갑자기 7%로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4대 악 근절’ 항목(7%)과 같은 비중이다. 생활안전, 피해자 보호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는 5%에 그쳤다. 그만큼 홍보가 중요해진 셈이다.
추위에 떠는 등산객에게 근무복을 벗어주는 사진으로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던 전북 지역의 여경은 2014년 특진을 했다. 서울의 한 강력계 형사는 “납치범 등 흉악범을 잡아야 특진을 하는데 사진 하나로 승진하는 게 어찌 보면 억울하다”고 했다. 다른 경감급 간부도 “선행이야 당연한 경찰의 의무인데 이걸 굳이 사진으로 찍어 언론에 배포하거나 상부에 보고하는 걸 보면 내가 다 쑥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성과 조작까지…진정성 찾아야
경찰서와 지구대별로 성과 경쟁이 일다보니 성과를 조작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지난해 9월 충북 청주의 지구대는 신입 여경이 기지를 발휘해 수배자를 검거했다고 홍보했다. 택배기사로 변장한 새내기 여경이 범인 검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 여경은 당시 수배자의 아파트 1층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은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를 열어 과장·왜곡된 보도자료, 선행 장면 등을 경찰이 직접 촬영하는 무리한 홍보를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홍보와 임무의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며 “경찰이 진정성을 회복하려면 홍보 위주의 평가지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훈훈한 사진들 연출이었나… 경찰, 도 넘은 ‘카메라 출동’
입력 2016-03-02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