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일(현지시간) 초강력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을 위한 표결을 실시키로 한 것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던 러시아가 막판에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태도 변화에는 미국과 중국이 ‘합동 설득작업’을 벌인 게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제재안은 지난 25일 전체회의에서 회람됐으며 이후 최대한 빨리 처리하려 했었다. 하지만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과 표트르 일리이체프 유엔 주재 러시아 부대사 등이 “검토 시간이 더 필요하다”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 등 이유를 내세워 신속한 처리에 딴죽을 걸었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이 러시아를 뺀 채 양국 주도로 결의안을 만든 데 대한 불만 때문에 의도적으로 ‘지연작전’을 벌이는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뜻밖의 몽니를 부리자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긴박해졌다.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중이 마련한 제재안을 설명했으며 최종안을 도출하기 위해 조율작업을 벌였다고 러시아 스푸트닉 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중국도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전방위 노력을 기울였다. 스푸트닉은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주러시아 수팡치우 중국 영사가 월요일(29일) 아침 일찍부터 만나 대북 제재안의 문구를 놓고 협의를 벌였다”고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인권이사회(UNHRC) 회의 참석차 1일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면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별도 회동하고 대북 제재 결의안 문제에 대한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언론들이 대북 제재안에 대해 ‘조율’과 ‘협의’를 벌였다고 보도한 것에 비춰 제재안은 러시아 측 요구로 일부가 완화되거나 표현이 다소 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중국과 비교적 신속하게 협의를 마친 것은 ‘큰 이견’은 없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 외교부도 북한의 1월 핵실험과 2월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난한 바 있어 북한을 제재한다는 큰 원칙에서는 미·중과 입장을 같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러시아로선 앞으로는 ‘우리를 빼놓지 말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데는 성공했기에 결의안 내용에 있어선 큰 고집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에 대한 일방적 병합 이후 이뤄지고 있는 미국과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와 관련해 미국이 일부 제재를 완화해주는 조건 등이 거론됐을 개연성도 제기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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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01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