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결국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중도 포기’하게 됐지만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부각시키는 데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실속은 수정·보완 없이 테러방지법을 처리할 수 있게 된 새누리당이 챙기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소조항 비판’ 성과 올린 野=야당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테러방지법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상세하게 알릴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테러방지법 조항을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독소조항을 비판하는 기회를 살릴 수 있었다.
실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오랜만에 야당다운 모습을 보게 됐다”는 등 응원 메시지가 쏟아지자 더불어민주당은 고무된 분위기였다. 필리버스터를 더 이어가자는 강경론을 폈던 이종걸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그동안 토론시간이 짧아서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잘 짚을 수 없었는데 이제 국민들이 많이 알게 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블록버스터급 흥행에는 못 미쳤다. 필리버스터의 목적인 입법 저지뿐 아니라 일부 수정조차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 지연의 책임을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필리버스터 동력을 떨어뜨렸다.
당장 야당의 지지율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던 지난 23∼25일 한국갤럽이 전국 19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더민주 지지율은 19%로 전주보다 1% 포인트 떨어졌다. 새누리당 지지율(42%)도 그대로였다.
◇與, ‘법안 후퇴’ 끝까지 막아=새누리당으로선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을 끝까지 사수했다는 점이 성과로 꼽힌다. 감청 요건 변경과 국회 정보위원회의 ‘전임(專任) 상임위화’, 국정원의 조사 및 추적권 대테러센터 이관 등 더민주의 대안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필리버스터 배수진’을 친 더민주의 압박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전략이 한 수 위였다는 평가보다는 이미 야당에 불리한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월 23일 테러방지법이 직권상정된 뒤로 야당이 법안 처리를 막을 만한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는 얘기다. 무제한 토론으로 인해 국회 회기가 끝날 경우 토론 대상이 됐던 법안은 지체 없이 다음 회기에서 표결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이 있어서다.
다만 야당의 거센 여론전이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원내 관계자는 1일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건 야당인데 국민 눈에는 새누리당까지 도매금으로 민생 법안 처리를 외면하는 것으로 비쳐졌을까 우려된다”며 “우리가 뭔가를 얻었다기보다는 야당의 정치 공세를 막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더민주 ‘존재감’ 알리고 새누리 ‘실리’ 챙겼다
입력 2016-03-02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