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계는 의회에서 국가정보원을 통제하는 기능과 역할이 미비하다고 본다. 국정원과 대테러업무 관련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당이 아닌 여야의 처지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국정원을 견제하기 위한 정당 간 합의,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합의가 좀체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지금은 국정원에 대한 불신 분위기를 완화하려 애쓰지만 제17대 국회에서 국정원의 도청과 불법 행동을 문제시했던 것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이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을 대표해 2005년 8월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국가정보원직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당시 법안 발의 취지는 법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에게 적용되고 있던 ‘비밀엄수조항’의 예외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세부적으로 정치 관여 금지, 직권남용 금지, 도청 금지를 위반하는 행위 등 국정원의 불법 행위를 신고하는 직원은 처벌하지 말자는 제안이었다. 도리어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자는 방안도 법안에서 주장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불법 도청에 의한 국가적 신인도 저하까지 우려했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 출신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2006년 3월 대표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에도 국정원의 정보활동에 통제·감독·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한나라당은 당시 “국정원은 도청과 과거사 문제로 정보기관 기능은 마비이며, 외형적 변화만 반복하다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에서 한나라당은 다른 법안을 통해 국정원의 정보를 선거운동 목적으로 유출하는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국정원의 불법 행동 및 정치적 영향력에 우려하던 한나라당의 입장은 제18대 국회 들어서는 사뭇 달라졌다. 2008년 10월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 휴대전화와 전자우편, 인터넷 쪽지(메신저)도 감청이 가능케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법안에는 각 개인의 통화 내역과 인터넷 이용 기록 등을 1년 이상 의무적으로 보관하다가 수사기관에 협조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었다.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통해 현재 국정원의 권한 비대화를 걱정하는 야당도 참여정부에서 테러방지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 조성태 의원은 2005년 ‘테러방지 및 피해보전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범정부 차원에서 테러의 예방과 대응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러 관련 국내외 정보의 수집·분석·작성 및 배포, 테러 징후의 탐지 및 경보, 외국의 정보기관과의 테러 관련 정보 협력을 중시한 법안이었다. 대책회의 등에서 심의·의결한 사항을 수행하기 위해 국정원장 밑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법학계는 문민정부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초반에 국정원 개혁 의지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여러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7월 김승규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국정원이 정책 동향을 파악하고 정책에 조언하는 기능은 살려도 되지 않겠느냐”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에 ‘스스로 개혁할 것’을 주문했지만,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 의원들은 구조적 개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국정원과 대테러 역할을 보는 시각 여야 그때그때 달랐다
입력 2016-02-29 21:15 수정 2016-03-01 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