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버님 면전에서 며느리와 정분 운운 했으니 사고는 사고다. 대형급은 아니고 소형급은 넘고, 글쎄 중형급일까.”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에서 김해숙(한혜경 역)의 혼잣말이다. 남편과 사별한 며느리가 아내와 사별한 시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그런데 ‘듣기 거북한 우려’가 밥상머리에서 나왔다. 이런 말을 함부로 내뱉은 시이모 양희경(김숙경 역)에 대한 김해숙의 한마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평범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살면서 숱한 사고를 겪는다. 극 중 양희경처럼 ‘입방정’으로 사고를 치기도 하고, 누군가의 속없는 말로 상처받기도 한다. 소형급부터 대형급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주말에 전면으로 포진했다. 최근 새로 시작한 ‘그래, 그런 거야’, MBC ‘가화만사성’, KBS ‘아이가 다섯’은 모두 평범한 가족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돈과 권력을 둘러싼 음모, 배신과 복수, 불륜과 패륜, 치정, 살인,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이고 지독한 막장 코드를 쏙 뺐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 평범해 보이는 가족의 삶도 충분히 드라마틱하다는 걸 보여준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지 많은’ 나무=지상파 3사의 주말 드라마들에는 등장인물이 많다. 세 드라마 모두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3대를 다루다보니 그렇다. 근래 드라마들이 적은 등장인물 몇몇의 사연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대가족 드라마들의 기본 공식이다. 이 드라마들 또한 그렇다.
‘가화만사성’에서 김영철(봉삼봉 역)은 자수성가한 가장으로 나온다. 중국집 배달부로 시작해 차이나타운 최고의 중식당을 열 정도니 남들 보기에 ‘성공한 삶’이다. 자식들도 잘 키웠다. 세상 걱정 없을 것 같은 인생이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고민과 갈등이 쌓여 있다. 착하기만 한 큰딸이 어린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은 것만으로도 삶의 굴곡을 엿볼 수 있다.
‘아이가 다섯’은 조금 젊은 가족이 등장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사별남과 이혼녀가 재혼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이 드라마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30대 돌싱(돌아온 싱글) 남녀가 겪는 에피소드는 통통 튀지만, 이들이 하루하루 겪어내는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소유진(안미정 역)은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워킹맘의 고달픔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다.
◇흔한 고민, 평범한 갈등이 주는 공감=‘그래, 그런 거야’는 드물게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을 그렸다. 80대 노부모, 60대 삼형제, 삼형제의 20, 30대 자식들까지 가까이 모여 산다. 20대부터 80대까지 한가족으로 묶여 각 세대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드러낸다.
이순재(유종철 역)가 가장으로 나오는 드라마 속 대가족은 평범하고 유복해 보인다. 60대 자식들은 대단히 부유하진 않지만 돈 걱정하고 살 정도는 아니다. 중산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손주들도 의사, 간호사, 출판사 에디터 등 대부분 번듯하게 직장생활을 한다. 가족 간 우애 좋고, 어른 존중할 줄 알고, 자식들도 존중과 바른 가르침 속에서 자랐다.
여기에서 ‘재미’가 끼어들 만한 구석이 과연 있을까. 그런데 보면서 웃음도 나고, 헛웃음도 난다. “그래,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 다 비슷비슷한 거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주말마다 대가족 점심상을 차려야 하는 야무지고 부지런한 며느리 김해숙은 갱년기 증상을 겪으며 매일이 고달프다. 친한 친구가 암으로 사망 선고를 받고 심난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막내아들을 지독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보다 창업을 하고 싶어 한다. 잘난 의사 아들은 결혼 문제로 속 썩이고, 쌀쌀맞은 딸은 신혼인데 남편과 갈등 중이다. 흔한 고민, 평범한 갈등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다섯’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고민까지 다룰 예정이다. 이혼 가정 자녀들이 받게 될 상처와 고민, 재혼 가정이 온전히 가족이 되기까지의 일상적인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내겠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막장 사라진 주말극, 가족이 채웠다… 지상파 오랜만에 착한 가족극 대결
입력 2016-03-0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