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를 다룬 영화 ‘귀향’과 ‘동주’가 역주행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512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귀향’은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스크린도 760개로 늘었다. 지난달 17일 374개 스크린에서 선보인 ‘동주’는 첫날 5위에 머물렀으나 열흘간 60만을 모으며 4위로 올라섰다. 스크린은 540개로 증가했다. 일본군에 희생당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두 영화는 3·1절과 맞물리면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이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에 발걸음을 옮기게 했을까.
◇국민들이 만들고 홍보한 ‘귀향’=상영관 잡기가 1000만 관객 돌파 못지않게 힘든 현실에서 영화가 상영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집 봉사활동을 하다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 심리치료 중에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접하고 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아 시민들의 후원으로 순제작비의 절반인 12억원을 조달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그린 이 영화의 촬영장에 저금통을 들고 온 아이들도 있었고 1000만원을 선뜻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손숙 정인기 오지혜 등 배우들과 스태프가 재능기부로 제작에 참여했다. 연출팀 일부는 단역을 맡기도 했다.
촬영 후에는 투자배급사를 찾고 상영관 확보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상영관을 늘려달라는 온라인 청원이 이어지면서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대형 극장업체가 상영에 동참했다. ‘귀향’의 손익분기점 관객 수는 60만명으로 이미 넘어섰다. 예매율과 객석점유율이 높아 계속 흥행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귀향’에 관객이 몰린 것은 최근 한·일 양국 간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타결 내용에 대한 반발이 영화 관람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얼마 전 일본에서 출시된 ‘독도 탈환’ 게임에 ‘귀향’ 관람으로 맞서자는 네티즌들의 여론몰이도 한몫했다. 영화 홍보사 시네드에피의 김주희 대표는 “국민들이 만들고 홍보한 국민들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고민과 울분에 공감한 ‘동주’=윤동주 시인(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의 71주기에 맞춰 개봉한 게 주효했다. 6억원 남짓의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는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손익분기점(약 27만명)을 넘어섰다. 네티즌 관람객 평점이 10점 만점에 9.34점으로 입소문에 힘입어 흥행에 불을 붙였다. 좌석점유율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는 같은 해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촌 사이인 윤동주와 송몽규란 두 인물을 통해 일제 강점기 청년들이 느껴야 했던 고민과 울분을 그리고 있다.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윤동주의 삶을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에 관람객들은 처음에는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자화상’ ‘별 헤는 밤’ ‘서시’ 등 주옥같은 시를 음미하고 일제시대 식민지 백성으로서 시 쓰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시인, 생전에 변변찮은 시집 한권도 출판하지 못했던 시인의 생애가 드러나면서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 개봉과 함께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 시집 필사본 ‘손으로 직접 쓰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북오션) 등이 잇따라 출간되고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서울예술단)가 공연된 것도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운명을 달리한 시인을 관객의 힘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슬픈 역사, 묵직한 울림… ‘공감의 물결’
입력 2016-03-02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