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경시하고 친미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이명박정부 시절. 옌쉐퉁(閻學通) 당시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현 당대국제관계연구원장)을 만나 동북아 정세 및 한·중 관계 등에 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식 인터뷰를 끝낸 뒤 사적인 대화에서 옌 원장이 던진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한국은 중국에 점차 의존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왜 미국 편만 드느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옌 원장의 발언은 중국 상층부에서 ‘경제 보복’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경고로 들렸다. 그는 후진타오에 이어 현 시진핑 국가주석의 외교정책도 자문하는, 매우 영향력 있는 석학이다. 그의 발언은 여전히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그가 2013년 발간한 저서와 이후 학술대회 강연 등에서 제안하고 있는 ‘양단(兩端)외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 한국의 왕조가 두 강대국과 동시에 동맹했던 것처럼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동맹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사드 한반도 배치는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북한의 4차 핵실험과 5차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다. 중국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사드가 대북억지력보다는 유사시 중국 영향력을 무력화하면서 본토에 대한 선제공격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벌이는 동북아 패권 경쟁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한·중 관계는 최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칭호까지 받은 박 대통령. 지난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천안문 망루에 시 주석과 나란히 박 대통령이 올랐을 때는 일각에서 ‘중국 경사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거듭 사드 배치에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한·중 관계는 어느새 이명박정부 때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지난 26일 상하이를 방문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국 재무장관 등과 만나 “사드는 사드, 경제는 경제”라는 입장에 합의했다지만 중국은 여전히 섭섭함과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일부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계속 경제보복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한 도발 대응을 위한 한·미동맹 차원의 전략적 상황이나 우리의 필요에 의해 사드 배치를 추진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이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외교적 경로를 통해 더 많이 배려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북한 제재를 위한 중국 압박의 필요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은 결코 아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정작 미국은 중국과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합의하면서 사드 배치에 급급해 하지 않는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삼성 현대차 등 주요 기업은 물론 수많은 중소기업도 중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인 유커와 함께 중국 내에서 한류에 열광하는 소비자들도 우리 경제에는 ‘큰손’이다. 우리는 미국과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지만 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사실상 경제동맹을 맺고 있다. ‘친미반중’ ‘반미친중’ 같은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미국과 중국을 모두 잘 이용하는 용미용중(用美用中)의 양단외교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미운 시누이는 되지 말아야
입력 2016-02-29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