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59) 필리버스터 영화

입력 2016-02-29 17:39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포스터

정치판 용어인 ‘필리버스터’가 마치 일상용어나 되는 것처럼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경위야 다 알려져 있으니 되옮길 것도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막힌 현상”이라고 한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다른 나라에도 있을 뿐 아니라 기막힌 현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거니와 필리버스터로 유명한 영화도 있다. 전설적인 미국 감독 프랭크 카프라가 만든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년에 나온 이 영화는 후대에 ‘최고의 정치영화’라는 평을 들었을 뿐 아니라 스미스씨(제임스 스튜어트)가 일부 상원의원들의 사욕을 위한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장장 2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하는 시퀀스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만들었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된 노회한 정상배들에 의해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라고 워싱턴 정가(상원)에 끌려온 시골 보이스카우트 대장이 정의와 진실, 이상을 위해 그들과 대결해 결국은 이긴다는(연단에 선 채로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하는 필리버스터를 무려 24시간이나 계속함으로써) 이 동화 같은 영화는 다수의 견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맹점을 필리버스터라는 제도를 통해 보완 또는 견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같은 필리버스터로 이루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스미스씨가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루려던 목표는 일부 상원의원이 사리를 채우기 위해 추진하는 댐 건설을 저지하고, 그 지역에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이스카우트 야영장을 지으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누가 옳은지 명백하다. 그러나 작금 우리 국회에서 벌이는 필리버스터 소동은 누가 타당한지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기우(杞憂)를 현실의 위험인 양 호도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