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박스’ 여는 또 한 명의 선수, 스포츠 과학

입력 2016-03-01 04:00
양학선의 도마 훈련 장면을 피규어스틱으로 변환한 그래픽. 조주 속도, 팔꿈치 각도 등 육안으로 잡기 힘든 미세한 부분의 차이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제공
여자 하키 선수들이 위성항법시스템(GPS)을 몸에 부착한 뒤 훈련하고 있다(위·오른쪽 사진). 상대국 전술 등의 데이터 축적을 위해 초고속카메라를 비롯한 첨단 기기를 활용한다. 한국스포츠개발원 제공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기도 전이지만,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선수촌은 벌써부터 ‘여름’ 준비로 한창이다. 이곳의 시계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열리는 8월로 맞춰져 있다. 과학적인 지원으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책임지는 한국스포츠개발원(KISS)은 지난해 9월 ‘리우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메달 가능성 있는 13개 종목을 선정해 집중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선수들과 함께 현장을 다니며 놓칠 수 있는 작은 부분까지도 메달 가능성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리우까진 158일 남았다.

미세한 각도도 잡아낸다

지난달 19일 만난 KISS 송주호 박사는 ‘도마의 신’ 양학선 선수에 대한 기술 분석으로 분주했다. 송 박사가 중점적으로 분석 중인 기술은 ‘양학선2’(가칭·손 짚고 옆 돌아 뒤 공중 돌며 세 바퀴 반 비틀기·난이도 6.4)였다. 고속카메라로 촬영한 모든 동작이 각종 변이 값과 더해져 하나의 수치로 산출됐다. 송 박사는 “조주(도움닫기)부터 손 짚기 동작, 몸 회전 동작 등 기술이 성공했을 때와 아닐 때를 비교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눈으로 식별 불가능한 미세한 차이조차 잡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양학선2’는 아직 공식 대회에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정식 명칭이 아닌 ‘가칭’으로 돼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송 박사는 그동안의 실패 원인에 대해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바꾸려면 그만큼 많은 힘이 필요로 하는데 (양학선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도움닫기의 추진력이 많이 떨어졌다. 뛸 수 있는 높이는 이제 2.9m 정도로 거의 정해져 있다”고 했다. 조주가 좋지 않으니 손 짚기 등 이어지는 동작에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양학선’ 기술(도마를 앞으로 짚은 뒤 세 바퀴 비틀기·6.4)과 함께 양학선을 런던올림픽 시상대 맨 위로 이끈 ‘로페즈 기술’(도마를 옆으로 짚은 뒤 세 바퀴 비틀기·당시 6.4)이 2013년 이후 6.0으로 난이도가 하향 조정 되면서 양학선은 ‘양학선2’에 매진해왔다. 양학선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북한체조 영웅인 이세광이 2번의 시기 모두 난이도 6.4의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고 있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선 이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관건은 회전이다. 송 박사는 “가능성 있는 건 회전이다. 다른 선수들은 점프 뒤 회전에서 팔꿈치가 조금씩은 벌어지지만 양학선은 팔꿈치를 몸에 딱 붙여서 회전이 빠르게 진행된다”며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건 5도 내외의 팔꿈치 각도다. 그 차이가 메달 색을 바꾼다”고 전했다.



박자와 싸우다

흔히들 ‘펜싱은 발로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만큼 펜싱에 있어서 빠른 발은 중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태릉선수촌의 펜싱 선수들의 화두는 ‘빠르기’보단 ‘리듬’이다. 펜싱 선수들은 지난 1월부터 하루 훈련의 시작은 항상 ‘무브먼트 펜싱’으로 한다. 동작에 리듬을 얹히기 위해 KISS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펜싱 동작에 현대 무용을 접목했다. 펜싱의 찌르기, 뻗기, 런지, 팡트 동작 등을 음악에 맞춰 행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정진욱 박사는 “보통 모이면 스트레칭 대신 무브먼트 펜싱으로 몸을 푼다. 박자에 맞춰 동작을 해야 하는 거라 타이밍 맞추기에도 좋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이와 더불어 리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텝 트레이닝’을 훈련 프로그램에 넣었다. 스텝 트레이닝은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때 여자 사브르 선수들에게만 적용해 성공을 거둔 훈련법으로 준비된 음악에 맞춰 여러 펜싱 스텝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트레이닝이다. 음악의 비트를 상대 공격으로 생각하고 가상의 대전을 펼치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2분30초짜리 음악 10개로 구성돼 있고 음악과 음악 사이엔 30초의 쉬는 시간이 들어가 있다. 정 박사는 “‘박자’와 싸우는 훈련법이다”며 “리듬감 뿐 아니라 지구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선 달리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펜싱에서의 지구력은 일반 지구력과는 다르다”며 “14m 거리 내에서 이뤄지는 경기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훈련을 통한 유산소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훈련의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체력테스트 결과 협응성이나 유연성, 민첩성 등에서 선수들의 성장이 보이고 있다. 정 박사는 “스텝 트레이닝에도 단계가 있다. 레벨이 올라 갈수록 비트가 빠르다. 상대의 공격이 그만큼 빨라지는 것”이라며 “훈련의 목적은 결국 자신만의 공격 래퍼토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는 만큼 이긴다

20년 만에 올림픽 메달 획득에 도전하는 여자 하키. 자신감의 비결은 축적된 데이터다. 하키 종목은 경기 중 전자장비 반입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최신식 과학기술의 활용이 가능하다. 위성항법시스템(GPS)을 통해 실시간 측정되는 위치정보는 경기 중인 선수들의 속도와 가속도 등을 분석해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객관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교체 인원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객관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술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다. 상대 전술에 따른 즉각적인 대응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첨단 장비의 힘을 실감했다. 당시 여자 하키 팀은 금메달을 획득하며 16년 만에 아시아 정상의 자리에 섰다. 최근엔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페널티코너’ 상황에서의 전문 슈터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키에서 페널티코너는 단숨에 경기 흐름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 전술이다. 공을 멈춰 놓고 슛을 하기 때문에 득점 확률도 높다. 여자 하키 팀을 전담하는 박종철 박사는 “초고속 카메라를 활용해 아시아 최고 페널티코너 전문 슈터인 중국의 왕 멍위와 비교하며 강하고 정확한 슛을 쏠 수 있는 자세 등을 연구하고 있다”며 “공이 스틱에서 떠날 때까지 발이 붙어 있느냐, 떨어져 있느냐 등의 차이가 강한 슈팅으로 연결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