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관 주변에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가게가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카페에 네일아트숍, 스케이트보드 가게까지 포위하면서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골목길을 33년째 지키고 있는 ‘우성이발관’이 사라질 처지가 됐다. 1984년 이곳에 터를 잡은 이발사 김길용(68)씨는 지난달 부동산에 이발관 자리를 매물로 내놨다. 옛 도심이나 정체된 지역이 개발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 오래된 상점 등이 다른 곳으로 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 골목에도 찾아왔다.
오르는 임대료를 당해낼 재간 없어
“임대료만 안 올라도 그대로 하겠는데, 아쉽지만 어떡하겠어.” 이발관 자리가 팔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김씨는 한동안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막상 닫을 생각하니 서운하긴 서운하네. 다른 데 가서 할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답했다.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김씨는 누군가 2∼3년 정도 운영하던 이발관을 인수했다. 9평 남짓한 가게를 얻으면서 권리금 500만원을 주고 보증금 150만원, 월세 12만원에 계약했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하게 물가가 오르고 주변 상권이 개발되면서 보증금은 500만원, 월세는 45만원으로 뛰었다.
그래도 버틸 만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건물주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70만원을 요구하면서 ‘이별의 시간’은 다가왔다. 33년이나 정든 공간이지만 치솟는 임대료를 당해낼 재간은 없다. 이 동네에는 이발관이 5곳 정도 있었는데 5∼6년 전부터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33년의 흔적들
이발관 안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출입문 쪽 벽에 ‘이용사 면허증’ 액자가 걸려 있다. 1977년 고흥군수에게 받은 것이다. 원래 흰 종이였지만 이미 누렇게 변했다.
10년도 더 된 ‘요금표’도 아직 살아 있다. 가격이 오를 때마다 달력에서 필요한 숫자를 찾아 붙였다고 한다. 현재 ‘커트’ 가격은 1만3000원. 달력에서 숫자 ‘13’을 오려 붙였다. 단골손님인 어느 백발노인이 손수 쓴 붓글씨도 한쪽 벽에 걸려 있다. 충효에 관한 옛 글귀다. 연초마다 찾아오던 이 노인은 4∼5년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발용 의자에는 110V짜리 전기 콘센트가 달려 있다. 예전에 썼던 110V용 이발기(바리캉)와 헤어드라이어는 색이 바랜 채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의자는 건물 벽과 전선으로 연결돼 있는데 벽 안쪽에 변압장치가 설치돼 있다. 요즘에는 따로 연결해둔 220V 콘센트를 이용한다.
김씨는 전기 이발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톱 가위와 막 가위 두개면 다 자를 수 있다”고 했다. 톱 가위는 흔히 숱 가위라고도 하는데, 가위 칼날 부분이 톱처럼 생겼고 그 간격이 넓다. 막 가위는 일반 가위다. 그는 직접 가위를 갈아 쓴다며 숫돌을 꺼내보였다.
단골이 사라진다
이발관을 찾는 사람이 줄면서 의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원래 7개였는데 5개만 남았다. 의자를 치운 자리는 간이부엌과 휴식공간으로 쓴다. 남은 5개 가운데 실제로 쓰는 의자는 3개뿐이다. 김씨는 “1990년대에 퇴폐 이발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부인들이 남편들을 이발관에 못 가게 해서 다들 미장원으로 갔어. 그때부터 잘 안 돼”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직 하루에 5, 6명은 찾아온다. 평일보다는 주말에 더 많이 찾는다. 28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이재구(58)씨가 이발관으로 들어섰다. 전날 전화로 예약까지 한 ‘22년 단골손님’이다. 이씨는 “14년 전에 일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아직도 여기를 찾아온다. 이발관이 사라지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고 했다.
젊은 손님도 있을까. 김씨는 “젊은 친구들도 가끔 와. 지금 애들은 옆에 싹 깎고 위에 너불너불 내리고 다니잖아. 초가집처럼 덜렁덜렁 거리면서”라며 웃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머리 스타일을 설명하는 듯했다.
이발관 인근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한다는 류현수(50)씨는 “우리 사무실도 임대료가 올라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며 “원래 있던 가게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단골이 사라지는 동네가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10년 넘은 바리캉도 22년 단골손님도 정들었는데”… 33년 동네 이발관의 마지막 풍경
입력 2016-02-29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