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서킷 브레이커

입력 2016-02-28 17:46

미국은 여러모로 좋은 나라지만, 총기 소지 문제는 생각할수록 딱하다. 서부 개척 시대의 역사를 생각하면 개개인이 총을 가지려는 게 이해는 되나 큰 총기 사고가 한 해에도 몇 번씩 터지는 상황을 보면 답은 명확하다.

미국인들이 총기 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 때문일 거다. 불안은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 집단적인 불안은 더 그렇다.

냉전시대의 핵무기 경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가 살기 위해 남을 다 죽이고 도 남을 만큼 핵무기를 계속 만들어냈다. 미국의 수도자 토머스 머튼은 냉전시대를 이렇게 꿰뚫어봤다.

“오늘날의 세계적 위기는 이념의 문제보다 훨씬 더 깊은 연원을 두고 있다. 인간 정신의 위기다. … 우리는 악의 근원을 찾다가 어느 한 대상을 발견한다. 이 희생양에게 두려움과 고통으로 범벅이 된 적개심을 퍼붓는다. 우리가 악의 구현이라고 지목한 대상을 파괴해 두려움과 죄책감을 덜어보려고 하지만 치유는커녕 또 다른 발작으로 우리의 병은 더 깊어만 간다.”

지난 12일 코스닥 주식시장에서 서킷 브레이커가 5년 만에 발동됐다. 원래는 전기가 과열되면 차단시키는 안전장치를 일컫는 말인데, 증시에 공포감이 지나치게 커져 주가가 폭락하면 잠시 거래를 중단하고 이성을 되찾으라는 제도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과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잇따라 발표하면서 불안과 공포가 번져가고 있다. 개성공단이 문 닫고 국가정보원이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은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추적할 수 있게 해달라는 법안까지 나왔다. 국회의장은 국가 비상사태라고 선언했다.

이때 야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들고 나왔다. 국회 본회의장이 텅 비었다. 거대한 회의장에 필리버스터를 하는 의원의 시간제한 없는 연설만 퍼지고 있다. 공포의 질주도 멈췄다. 정치의 서킷 브레이커인 셈이다. 이 참에 커피나 한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김지방 차장 fat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