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3·1독립선언서 정신은 아직 유효하다

입력 2016-02-28 17:45

역사학자 강만길은 1978년 출간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서 남북 분단이 끝날 때 비로소 참된 광복을 맞이할 수 있다고 썼다. 그해 5월 군에 입대했던 내게는 놀라운 시사였다. 광복 분단 통일 등 거대담론의 실체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으니.

군복무도 분단시대의 파편일 테고 어쩌면 머잖아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후 90년대 남북한 유엔공동가입 및 기본합의서 채택, 2000년대엔 6·15선언,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분단시대의 종언을 예고하는 듯한 낭보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그 모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핵과 로켓을 앞세운 북한의 도발 앞에서 기대는 어그러지고 희망은 분노가 됐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우리가 대북강경책을 주장하는 동안 미·중은 손을 맞잡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에 대해 전향적인 말을 주고받고 있지 않은가.

상대의 움직임에 대한 즉물적인 해법만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읽지 못한 채 대응한다면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북한을 강하게 몰아세우겠다고 벼르는 모양이나 즉물적인 응징은 분단을 더욱 조장할 뿐이다.

화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특히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아가는 상황에서는 그 반대론도 거세다. 나약한 온정주의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북한과 평화체제를 말하는 것 자체가 저들의 술수에 휘말리는 일,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은 이제 그만 등 경멸에 가까운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되묻고 싶다. 강경책으로 이 분단체제를 깨부술 수 있나. 만에 하나 군사작전을 통해 북한 체제를 붕괴시켰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우리 민족의 참담한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남북이 두 번씩이나 전쟁을 치른 이후의 사태 수습은 대체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결국 남는 것은 공존을 위한 노력뿐이지 않겠는가.

평화체제를 위한 열망은 예수의 십자가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메시아 예수는 왜 하늘의 권능을 앞세워 당대의 권력자들을 단숨에 쓸어버리는 기적을 베풀지 않고 되레 자신이 십자가에 달렸을까. 그래서 그는 실패했나. 그가 로마와 헤롯왕 등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왕이 됐더라면 그의 치세는 길어야 수십년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오늘까지 기억되지도 않았을 터다.

1919년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운동의 대중화·일원화와 함께 평화적 실천을 강조했다. 태화관에서 선언서를 낭독한 그들은 바로 검거되기를 바랐다. 그만큼 비폭력 의지가 강했다. 운동은 때로 폭력투쟁으로 전개되기도 했지만 그해 4월 말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1188건의 시위 중 비폭력 시위는 778건으로 65.5%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33인의 낙관적이고 소극적인 독립 청원주의적 태도, 구체적인 조직 및 투쟁계획·전술 부재 등을 3·1운동의 한계로 꼬집는다. 그럼에도 실패했다고는 평가하지 않는다. 기독교 불교 천도교 지도자들이 뜻을 모았고, 무엇보다 선언서가 조선은 물론 일본 중국 그리고 세계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미래비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언서는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거론한다. 조선의 독립이 조선인의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며 일본을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 평화공존정신은 지금 한반도에 그대로 대입해볼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한의 번영은 물론 잘못된 길에 서 있는 북한을 돌이키게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참된 광복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니 3·1독립선언의 평화공존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일은 97번째 맞는 3·1절, 다시금 그 뜻을 새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