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필리버스터 정국’ 출구전략… 전향적 태도 보이면서 북한인권법 법사위 통과

입력 2016-02-26 21:14 수정 2016-02-27 00:07
북한인권법이 11년 만에 여야 합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야당이 여당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테러방지법 제정안과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 문제를 풀기 위한 교두보 마련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은) 이미 충분히 양보할 만큼 양보했다”며 강경 입장을 이어갔다. 여야 대표·원내대표의 심야 회동도 빈손으로 종료됐다.

국회 외통위는 26일 오후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인권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곧이어 법사위도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가 다퉜던 제2조 2항 ‘기본원칙 및 국가의 책무’ 내용은 ‘국가는 북한인권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로 규정했다. 법이 북한인권 증진을 주된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야당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필리버스터 정국 출구전략 차원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 무제한 토론을 이어갈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커서다. 당 내부에선 필리버스터를 멈출 명분을 얻지 못할 경우 자칫 선거 지연의 책임을 야당이 덤터기 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전날 여당에 대표·원내대표가 함께하는 ‘2+2’ 협상을 제안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오전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안한 테러방지법 중재안을 수용할 용의가 있고, 이를 포함해 몇 가지 독소조항을 수정하기 위해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의장은 테러방지법 중 국정원의 통신제한조치(감청) 사유 규정과 관련 ‘테러방지를 위해’ 부분에 ‘국가안전보장의 우려가 있는 경우’ 문구를 추가하는 방향의 중재안을 제시한 상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회동 환영 입장을 표했지만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미 우리는 야당의 요구사항을 여러 차례 반영한 수정안을 내놨다”며 거절했다. 원 원내대표는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 원내대표를 만나 ‘2+2’ 회동의 선결조건으로 국회 상임위를 열어 지난 22일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북한인권법과 무쟁점 법안 처리를 요구했다.

원 원내대표는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이 자꾸 법안 수정을 말하는 건 실질적인 입법 저지 전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구 획정안 처리의 ‘마지노선’인 29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만큼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민주도 오후 의원총회를 열어 “새누리당의 입장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한다면 저희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필리버스터) 마지노선은 없다”고 맞불을 놨다. 다만 원 원내대표의 회동 전제 조건을 모두 받아들여 협상의 ‘성의’를 보였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9시 가까스로 회동을 가졌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2시간여 만에 종료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 상임위원회와 상설특별위원회 위원장들에게 의사진행 담당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필리버스터 정국 장기화에 대비해 의사진행 권한을 상임위원장단에 이양, 체력 분배에 나서자는 것이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는 오전 10시 회의를 속개했지만 2시간여 만에 획정위원들의 ‘피로 누적’을 이유로 산회했다. 획정위는 나흘째 회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여야 추천 위원들이 각각 4명씩 동수로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획정위는 27일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