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수지 아하가족성장연구소 이사장 “신앙 가진 환자들, 두려움·우울증 잘 이겨내”

입력 2016-02-28 18:24 수정 2016-02-28 21:41
평생 간호사로 아픈 이들과 함께해온 아하가족성장연구소 김수지 이사장은 “남은 생애도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2010년 고 이태석 신부를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본 뒤 기독 간호사의 사명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해 12월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한 간호사 선교사의 요청에 주저하지 않고 2011년 1월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로 떠났다. 69세 나이였다. 4년 동안 말라위 릴롱궤 대양간호대학 교장으로 간호 교육 및 행정, 지역 봉사 등에 힘썼다. 이 대학은 지난해 종합대학교로 승격됐다.

아하가족성장연구소 김수지(74) 이사장 이야기다. 1979년 호스피스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그는 이화여대 간호과학대학장과 서울사이버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 간호학계의 노벨상인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말 한국YWCA에서 열린 ‘YWCA 제13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받았을 땐 “친구가 생각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말라위에서 가르친 학생과 동료 교수, 현지 주민의 해맑은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병원에서 만났던 환자와 의료진도 생각났고요. 아무리 바빠도 이들 친구를 대할 땐 하나님께 하듯 했습니다. 일 중심적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한 학술모임에 참석한 김 이사장을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만났다. 연구소를 통해 건강한 가정을 세워가는데 힘쓰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요즘 해체된 가정이 많아 안타까운데 ‘비폭력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며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곧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하가족성장연구소는 상담과 교육, 코칭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 등을 해결하도록 지원한다. ‘아하 패밀리 코칭’ ‘아하 존중 대화’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가정 전문가 양성에도 주력한다. 김 이사장은 가정 관련 특강을 하면서 가정 회복에 뜻이 있는 사람들의 후원을 받는 등 연구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실버홈 ‘사랑의 집’도 운영하고 있다. ‘사랑의 집’에선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노인들과 동고동락 한다. 노인들의 신체적 돌봄 외에 영적·정서적 치유에 초점을 맞춘 예배와 음악·미술·오락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그는 “남은 생애도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50여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정성스런 돌봄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 간호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다.

특히 임종 환자를 위한 간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시어머니 덕분이다. 1965년 불신자였던 시어머니가 49세 나이로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동네 사람들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수군댔다. “충격이었지요. 시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목숨 걸고 기도하며 간호했지요.”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했고 시어머니는 이후로 18년을 살았다. 물론 믿음 생활도 하면서 말이다.

김 이사장은 “사람들은 아무리 상황이 나빠져도 희망을 가지려 하고 영원한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영적 욕구’를 갖고 있다”며 “하나님을 영접한 환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우울증도 잘 극복하는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임상을 토대로 1980년대 ‘영적 간호’의 개념을 한국 의료계에 소개했다. ‘영적 간호’ 등을 번역해 출간했고 병원에서 관련 교육과 세미나 등을 진행했다.

영국의 프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김 이사장은 “간호사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전인적으로 돌보는 일을 한다”며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게 영적 간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