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세미나서 명화 강의?… 말씀 공부 중 입니다!

입력 2016-02-28 18:20 수정 2016-02-28 21:39
전겸도 목사는 성경을 연구하든, 목회를 하든 본질에 충실하자며 여백이 있는 삶을 얘기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분명히 목회자 세미나 현장인데 강의는 '명화 감상'이었다. 빔 프로젝터는 가로 세로 3m짜리 흰색 스크린 위에 그림을 비췄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렘브란트의 '자화상', 마르셀 뒤샹의 '샘' 등 수십 점의 작품 사진이 차례로 떴다. 마이크를 잡은 남자 강사의 옷 스타일도 예술가적이었다. 청바지에 재킷을 걸쳤고, 안에는 나비넥타이와 분홍색 스카프로 목을 감쌌다. 머리엔 검은 털모자를 화가처럼 쓰고 있었다. 강의 '진도'는 잘 나가지 않았다. 가만 듣다보면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말 속엔 번득이는 통찰과 원리가 묻어나왔다.

“목회자들이 설교는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설교에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는 게 중요합니다.” “‘보이는 대로’를 줄이고, ‘있는 그대로’를 살려보세요.” “추사의 ‘세한도’를 봅시다. 여백이 보이시나요. 여백이야말로 파워이고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나 사회는 여백이 없어요. 꽉 채울 목표만 있어요.”

강사는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 위해 사도행전 1장 8절을 예로 들었다. “전도 독려를 위해 이 본문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전도를 명령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구절이 ‘되라’입니까. ‘되리라’ 입니까. 성령이 임하면 내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에요. 성경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읽지 않아요. 그러면 본뜻 대신 의도가 들어갑니다.”

지난 17일 충남 금산군 남일면 사사(士師)학교 대강당. 학교 교장인 전겸도(68) 목사는 알 듯 모를 듯한 강의로 청중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 목회자와 전도사들. 이른바 ‘큐인 말씀 세미나’ 현장이었다. 이날 강연에는 중3 소녀가 작성했다는 성경 묵상 노트 공개가 하이라이트였다. 욥기 1장 13∼22절에 대한 묵상이었다.

소녀는 개역개정과 NIV, 현대인의성경 등 3가지 종류의 성경 말씀을 대조해 표를 만들었다. 중요단어로 ‘예배’ ‘하나님’ ‘여호와’ ‘범죄’ ‘사환’ 등을 뽑았고, 이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자신의 정의, 이미지·콘셉트를 표로 작성했다. 느낌과 감동도 적었다. 소녀는 본문을 읽고 “구덩이로 슉 빠지는 느낌이다” “우르르 쾅쾅”이라고 감상을 써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도 정리했다. 소녀는 3가지 본문을 3번 정독했다 한다.

소녀가 보여준 묵상법은 사사학교 학생들의 말씀 공부법이다. 사사학교는 기독교 대안학교로 1996년 충남 대전 도원교회에서 시작했다. 당시 담임이었던 전 목사가 미래 지도자인 ‘사사’들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뛰어들었다. 2005년부터는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으로 자리를 옮겨 기숙형태로 운영한다.

학교는 말씀 교육에 최우선을 둔다. 중1에서 고3까지 학생들은 1년에 두 번씩 성경을 통독하고 수업의 1교시는 말씀 묵상 시간을 갖는다. 학년별로 조를 편성해 묵상한 말씀을 나눈다. 이 말씀 묵상 방법이 ‘큐인’이다. ‘입체(Cubical)’와 ‘통전적(Integrated)’이란 뜻의 영어 앞 글자에서 땄다.

전 목사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과 세계의 창조적 구조로 말씀을 보자는 것”이라며 “성경을 보는 방법의 장점이 복합적으로 잘 녹여져 있다”고 말했다. 큐인 말씀 묵상은 ‘나→성경→타인’의 구조를 ‘하나님→성경→나→타인’의 구조로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좋은 예화나 적용을 내려놓고 주어진 본문에 충실한다. 잘 아는 내용이라는 마음을 비운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읽는다. 주의 음성을 듣고 삶에 적용한다. 타인과 나누고 전한다.

전 목사는 독특한 인생을 살았다. 강의 후 들려준 그의 삶은 입체적이었다. 서울공대를 지망했던 그는 고3 시절 요한복음 6장을 읽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 대신 만족을 위해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 진학을 거부했다. 이후 고뇌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회사를 경영하면서 정치 경제 역사 문화를 깊이 배웠다 한다. 그러다 사업이 망했고 간경화와 녹내장 등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신비한 체험을 했고 이후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인 서울장신대에서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91년부터 시작한 목회는 교회론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가 학교를 시작한 것은 다음세대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함께 교회 성도가 너무 불어난 현실적 이유에서였다. 당시 성도는 30여명. 두려워졌다고 했다. “주변 목사님들을 만나면 성도 수만 얘기했어요. 그런데 10명 모이면 예배를 못 드리고, 성도의 교제가 안 됩니까. 제자교육은 못 하나요. 목사가 성도 수에 집착하는 것은 목회가 아니라 프로그램 하자는 겁니다.”

전 목사는 중대형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 했다.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쓰는 것이라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본질을 추구할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 하나면 다 됩니다. 어떤 프로그램도 하나님의 일을 압도하지 못합니다.”

금산=글·사진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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