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보름에 ‘부럼’을 깨물었나요. 부럼은 대보름날 새벽에 깨물어 먹는 딱딱한 열매인 호두, 땅콩 등을 이르는 말입니다. 부럼을 깨물면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지요.
부럼을 종과(腫果)라고 하는데 腫은 종기(腫氣) 종양(腫瘍) 등에 든 글자로 곪은 것, 즉 부스럼을 말합니다. 果는 견과(堅果) 등에 쓰이며 열매를 뜻하지요. 종기를 이르던 옛말 브스름이 브스럼, 브럼, 부럼으로 변한 것입니다.
호두나 조개, 달걀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을 ‘껍데기’라고 합니다. 거짓이나 가짜를 낮춰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요. 화투에서 끗수가 없는 패를 껍데기, 또는 피(皮)라고 합니다.
‘껍질’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하지 않은 물질을 말합니다. 귤껍질처럼. 호두나 은행 등의 껍데기를 깨면 안에 얇은 껍질이 보이지요. 그것을 ‘보늬’라고 합니다.
‘돼지껍데기’가 음식메뉴에 올라 있는데, ‘돼지껍질’이 합당해 보입니다. 입이 말을 끌고 가면서 굳어진 것이지요.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부여 백마강변이 고향인 고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뒷부분입니다. ‘민주’에 빌붙는 기회주의자들을 꾸짖은 시인데, 지금도 껍데기들이 세상에 넘쳐납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딱딱한 껍데기, 부드러운 껍질
입력 2016-02-26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