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선거 연령

입력 2016-02-26 17:27

2002년 9월 실시된 독일 총선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 하나가 수립됐다. 세계 최연소 국회의원의 탄생이다. 녹색당 비례대표로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된 안나 뤼어만(여)이다. 당시 그의 나이 19세,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 달 만에 금배지를 달게 된 것이다.

그는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 재선에 성공했다. 그가 2005년 방한 때 “기네스북에 세계 최연소 의원 기록 인증을 신청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유료라 그만뒀다”고 한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우리나라에선 고교 졸업 무렵이면 총선 출마는커녕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선거의 계절이다.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은 1997년 4월 13일 이전에 출생한 국민들만 투표가 가능하다. 97년생은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 또래다. 사회에선 사실상 어른 대접을 하지만 정작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 또래는 얼마 안 된다. 선거 연령이 민법상 성년인 19세에 맞춰져서다. 18세면 신용카드 발급은 물론 자동차 면허를 딸 수 있고, 남자의 경우 제1국민역으로 편입되는데 유독 선거권만 19세로 제한한 건 뭔가 어색하다. 인지발달단계이론을 정립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1896∼1980)는 “15세 정도면 이미 성년과 같은 정도의 인식 틀을 형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선거 연령을 19세로 정한 나라는 없는 듯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19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18세가 148개국(77.9%)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17세는 인도네시아 등 4개국, 16세인 나라도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6개국이나 됐다. 의미 없는 선거지만 북한도 17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한다.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당시 21세에서 60년 민주당 정권 때 20세, 2005년 19세로 다시 선거 연령이 하향 조정됐다.

이번 선거법 협상에서 세계적 흐름에 맞게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새누리당 반대로 무산됐다. 다른 나라 18세들이 갖고 있는 정치 의식이나 판단력, 사고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건지 우리나라 18세들은 자존심 상하겠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