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철학이다. 집장수가 짓는 붕어빵 같은 집이 아니라면 가족 구성원은 물론 이웃 관계에 대한 고려가 설계에 담겨 있다. 그래서 건축은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 일본인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67) 한양대 객원교수가 한국에 지은 집은 어떨까. 일본 가나가와대 건축학부 교수였던 그는 10년 전 한국으로 건너와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로 근무하다 2013년 퇴직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산17∼26. 경사 17도의 가파른 야산에 S자 모양 길을 좌우에 두고 20채에 가까운 단독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인근 이우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이 참여한 커뮤니티 주택이다. 주요 건축가로 참여한 도미이 교수가 지난 17일 가까운 건축가들에게 집 구경을 시켜준다기에 동행했다. 그가 설계한 6채 중 4채가 이날 공개됐다. 3채에는 이미 거주자가 있고, 1채는 마감공사가 한창이다.
그는 한국에 사는 동안 석굴암의 기둥 없는 돔형구조를 응용한 한옥을 설계했던 ‘융합형 건축가’다. 이번에 선보인 도미이 스타일은 뭘까. 목조주택인 점이 우선 눈길을 끌지만 그보다는 공간 운용 방식에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남다른 점이 있다고 건축가들은 입을 모았다.
우선 스킵 플로어(한 층에 단 차이가 나는 바닥의 구조)를 적극 사용한 주택의 내부다. 거실과 주방, 부모방과 가족실, 아이방과 다락방 등이 반 층씩 엇갈리며 올라간다. 같은 층 같으면서 다른 층 같은 공간과 공간들은 뱅글뱅글 도는 작은 계단들로 이어진다. 여기가 몇 층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소라고둥 집’ 마냥 어느새 꼭대기에 이르게 된다. 동화의 나라 같다. 김재관 건축가는 “우리나라는 1, 2층이 딱딱 구분되지만 여기선 그런 구분이 없어 ‘흐르는 집’ 같다”고 했다. 한양대 신원혜 교수는 “건축 면적 15∼20평 집이다. 밖으로의 확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안으로 무한대로 확장되는 건축이다”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연속성은 층과 층 사이를 나누는 나무판 골조를 통해 강화된다. 그가 지은 집들은 위층이 마루 형식으로 돼 있다. 숭숭 뚫린 틈으로 아래층이 훤히 보이고 빛과 소리가 흐르는 그곳에 대체로 가족실이 있다. 프라이버시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구조다. 도미이 교수는 “주방에서 일하는 주부가 위층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거실 난로의 온기가 위층으로 잘 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달 전 입주한 건축주 A씨는 “사방이 다 통한다. 그게 좋은 점이면서 불편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가 의뢰받은 집들은 연면적이 넓지 않다. 기본적으로 건폐율 20%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간을 두 개로 나눠 별채를 뒀다. 15∼20평에 불과한 본채에 4∼5평의 코딱지만한 별채가 딸린 것이다. 도미이 교수는 “별채는 쓰기 나름이다. 손님방이 될 수도, 재택 사무실로 쓸 수도 있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면 옛날 사랑방처럼 할아버지가 거주하며 여러 세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에서 중요한 건 예쁜 집이 아니라 구조적인 프로그램이다. 집의 구조가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원래 있던 밤나무를 그대로 거실 안에 들이고, 1층은 사각이면서 천장은 원으로 이어지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동양철학을 구현한 집, 별채에 툇마루와 정자 식 난간을 내고, 본채 거실에는 온돌방을 덤으로 곁들인 집…. 구석구석 발견의 기쁨이 있던 집구경이었다.
용인=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흐르듯 사방이 다 통하는… 집의 재발견
입력 2016-02-2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