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 출연하는 지휘자 구자범(46)의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난 1월 그가 연극 ‘마스터클래스’(3월 10∼20일 서울 LG아트센터)의 음악감독 겸 피아노 반주자로 나선다는 소식은 세간을 놀라게 했다. 2013년 성희롱 파문으로 클래식계를 떠난 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두문불출해 왔던 그가 마침내 관객 앞에 다시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지난달 제작발표회에 불참하며 여전히 세상과 거리를 뒀다. ‘마스터클래스’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인 배우 윤석화를 통해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그를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정미소소극장 연습실에서 만났다.
구자범은 “윤석화 선생님과 처음 이야기할 때는 피아노 반주만 하는 거였다. 그런데 대사까지 소화하게 됐다”며 웃었다. 실제로 연습실에서 지켜본 그는 꽤 여유 있게 대사를 소화했다. 오페라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에 편지를 전달하는 하인 역을 맡아 레치타티보(오페라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까지 해냈다. 그는 “반주자의 성격을 놓고 차가운 모습부터 친절한 모습까지 여러 버전을 실험하고 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좀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윤 선생님이 반대한다”고 말했다.
불세출의 소프라노 칼라스가 성악 마스터클래스를 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삶과 예술관을 그린 이 작품에는 신인 성악가들이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맥베스’ 등의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 하겐 시립오페라극장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한국에서도 국립오페라단 등에서 지휘를 했던 구자범으로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는 “독일에 있을 때도 성악가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반주를 종종 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연극을 보면 칼라스라는 인물이 정말 까칠하기 짝이 없지만 예술가로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욕을 먹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것은 하고 넘어간다. 나 역시 예술과 관련해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싫다”고 강조했다. 그는 “4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삶과 예술에서 진짜와 가짜를 놓고 확신이 안 서는 것 같다”며 “그래도 음악적으로 진짜가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적어도 가짜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는 연극에 대해서만 질문하는 것을 전제로 성사됐다. 그래서인지 지휘자 복귀를 바라는 클래식계 관계자나 팬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구자범은 입을 다물기도 했다. 그는 “내가 클래식계에 속하는 인물이었나? 과연 팬이란 존재가 있는 건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지난 3년간 클래식 음악을 거의 듣지도 않았다”고 했다.
동석한 윤석화는 “구자범은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으로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서 “복귀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서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단독] 연극 ‘마스터클래스’로 돌아온 지휘자 구자범… “예술 앞에서 가짜는 되지 말아야”
입력 2016-02-26 00:57 수정 2016-02-26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