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의장이 요청한 획정안 국회 제출 시한을 또 지키지 못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3일 획정위에 획정 기준을 넘기면서 ‘25일 정오’를 제출 시한으로 못박았지만 획정위는 밤늦게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새 선거구 구역표가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6일 처리하기로 한 여야 합의도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 대리전’ 못 벗어난 획정위=획정위의 선거구 획정안 국회 제출을 앞두고 여야의 관심은 선거구 간 경계 조정에 모아졌다. 원칙적으로 선거구는 시·도의 관할 구역 내에서 인구와 행정, 교통 등의 조건을 고려해 획정하도록 돼 있다. 자치구·시·군의 일부를 떼어내 다른 지역구에 붙일 수도 없다. 다만 인구 편차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토록 했다. 서울 중구가 12만6237명(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하한 기준(14만명)에 미달하자 성동갑의 일부 동(洞)을 중구에 붙이는 식이다.
문제는 헌재 결정에 따라 조정 대상이 된 선거구가 246개 중 61곳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들 지역의 경계를 새로 그리면서 불가피하게 인접 지역구로도 연쇄 조정이 이어졌다. 예외적으로 적용키로 한 자치구·시·군의 일부 분할도 역대 선거구 획정과 비교하면 많았다는 평가다.
자치구 내 경계 조정에서도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서울 강남은 갑의 인구가 상한선(28만명)을 초과해 분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느 동을 떼어낼지를 놓고 획정위원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별로 여야 지지세가 달라 서로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벌어진 셈이다. 경기도에선 장안 권선 영통 팔달에 한 곳이 더 늘어나는 수원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획정위가 획정 기준을 전달받은 뒤 이틀 연속 밤샘 회의를 하면서도 끝내 획정안을 확정하지 못한 건 이런 지역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획정위 측은 “동 단위로 경계를 긋다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획정위가 마지막까지 여야 대리전을 펼친 결과라는 비판도 나왔다. 여야는 선거구 획정 때마다 불거졌던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정하는 일) 논란을 피하기 위해 획정위를 국회 내 기구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 기구로 격상시켰는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획정위가 정치적 고려 없이 선거법이 정한 원칙과 국회가 넘긴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경계를 조정했다면 제출 시한을 맞추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사상 첫 독립 기구로 출범한 획정위는 여야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일단 안전행정위원회 심사를 거치게 된다. 이날 오후 4시로 예정됐던 안행위 전체회의는 연기됐다. 안행위는 획정안이 선거법에 명백하게 위배된다고 판단되면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획정위에 다시 제출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획정위는 10일 이내에 새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내야 하고, 국회는 수정 없이 바로 표결에 부쳐야 한다. 여야는 선거법 개정안을 26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획정안 자체가 넘어오지 않은 데다 야당이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면 본회의에 상정할 길이 없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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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25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