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배트맨 피규어 싸게 팔아요”… ‘17억 먹튀’ 父子

입력 2016-02-25 21:47

인기 ‘피규어’를 싸게 판다고 속여 17억원을 가로챈 부자(父子)가 붙잡혔다. 피규어는 유명인, 영화 캐릭터, 동물 등을 본떠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든 모형 장난감이다. 아이 같은 취향의 어른을 뜻하는 ‘키덜트(kid+adult)족’이 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에게 피규어를 사려다 돈만 뜯긴 피해자가 1655명이나 된다.

서울 도봉경찰서는 25일 인터넷쇼핑몰 ‘피규어킹’ 운영자 김모(46)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그에게 통장 등을 빌려준 김씨의 아버지(74)를 사기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2013년부터 이 사이트에서 인기 피규어를 특가로 예약 판매한다고 광고했다. ‘아이언맨’ 피규어는 16만6000원, ‘배트맨’은 24만9000원 등으로 정가보다 30% 싼값을 제시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미래 로봇 피규어는 990만원인데 899만원에 판다고 했다. 예약 판매여서 6개월∼2년을 기다려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1655명이 사겠다며 송금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피규어는 배송되지 않았다. 2012년까지 연매출 8억∼9억원의 업계 3위 쇼핑몰이었기에 구매자들은 “수작업이 많아 제조사에서 생산이 지연되고 있다”는 김씨의 말을 믿었다. 김씨는 송금 받은 돈을 외제차 구입 등 호화 생활에 썼다. 사기를 눈치 챈 구매자가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면 곧바로 삭제했다. 경찰에게 신고하려는 이들에게는 다른 구매자에게 받은 돈으로 물어주는 ‘돌려 막기’를 했다.

국내 키덜트 인구는 500만명에 육박해 있다. 30, 40대 남성을 중심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시장 규모만 7000억원대로 추산된다. 키덜트 제품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작고 단순한 피규어는 5만∼6만원 정도지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다. 주로 영화나 만화 캐릭터를 실감나게 구현한 제품이 인기를 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