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면 속, 등에 한가득 승천하는 용을 그려 넣은 남자가 나온다. 드레스룸에서 옷을 고르는데 나란히 걸린 슈트의 색깔이 황당하다. 꽃분홍, 진한 파랑, 보라, 빨강…. 파란색 슈트를 골라 입고, 일수가방을 옆에 낀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오늘 재판 있는 날이라 바쁘다.”
최근 시청률 20%로 종영한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박성웅(박동호 역)의 첫 등장은 이랬다. 영화 ‘신세계’ ‘무뢰한’ 등에서 강하고 선 굵은 악역을 맡았던 그가 리멤버에서 보여준 모습은 신선했다.
박성웅을 25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폭이나 범죄자 이미지가 강했던 박성웅은 리멤버에서는 변호사, 영화 ‘검사외전’에서 검사로 출연하면서 법조인 이미지를 얻어가고 있다. 박성웅도 이미지 변신이 반갑다고 했다.
“그동안 악역 이미지가 너무 강했는데 그 이미지를 벗은 것 같아 다행스러워요. 벗기까지 3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사실 제가 리멤버나 검사외전에서처럼 실제로는 허당 같은 면모도 있고, 귀엽기도 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조폭이나 범죄자가 먼저 연상되는 배우였지만 박성웅은 법학도 출신이다. ‘집안에 판검사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법대에 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군 제대 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연기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싶었어요. 대중에게 희로애락을 줄 수 있는 삶, 박성웅은 한 명이지만 수많은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게 배우의 매력이잖아요.”
리멤버의 박동호는 187㎝의 큰 키에 화려한 옷을 입고, 부산 사투리를 쓰며, 법리와 술수를 적절히 써가며 승소율 100%를 만들어내는 형사 변호사다. 배신자와 조력자를 넘나들며 주인공 유승호(서진우 역)와 갈등, 대립, 협력, 우정을 모두 보여줬다. 극의 활기를 불어넣은 강렬한 캐릭터였다.
“첫 촬영 때 흰 양복에 백구두, 핑크 셔츠를 입었어요. (키가 크다 보니) 다행히 어울리기는 했는데… 난감했죠. 이런 옷들을 어디서 구해오나 싶었어요. 그런데 계속 입다 보니 괜찮은 것도 있더라고요. 극 중 입었던 오렌지색 코트는 마음에 들어서 아예 제가 샀어요.”
충청도 출신인 박성웅은 부산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시청자들의 질책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아낌없이 노력했다. 부산 사투리 과외를 받았다. 대본이 나오면 한 줄씩 녹음해서 보내주고, 부산 사투리 억양이 담긴 녹음 파일을 받아 거듭 연습했다. 그는 “제 대본은 거의 악보 수준이었다”고 했다.
올해로 데뷔 20년이 된 박성웅은 다양한 작품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리멤버 촬영이 끝나자마자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촬영에 들어갔다. 이번엔 코믹 연기에 도전한다. “연봉 50만원으로 버티던 시절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리멤버’서 선악의 두 얼굴 열연한 박성웅 “저 알고보면 허당에 귀여운 면도 있어요”
입력 2016-02-26 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