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가 6월로 예정된 가운데 동유럽권 국가들이 난민 문제를 두고 각자의 해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덴마크, 체코 등이 영국에 이어 ‘탈EU’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유럽의 분열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영국 BBC방송 등은 24일(현지시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EU의 난민 할당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난민 할당제는 유럽의 문화와 종교적 정체성을 바꿔버릴 것”이라며 “EU의 난민할당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 헝가리 정부는 의무 할당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르반 총리는 투표일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국민투표안을 이미 선거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0만명 넘는 난민이 유입되면서 유럽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가 시작됐다. EU는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난해 9월 난민 12만명을 추가 수용하고 국가별로 할당할 방침을 정했다. 당시 헝가리는 이에 반대했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도 “헝가리 의회에선 난민 강제 할당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회원국이 지지하지 않는 난민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은 권력 남용”이라며 EU 당국을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난민 추가 수용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는 발칸반도 국가들과 함께 독자적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날 수도 비엔나에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등 9개 발칸 국가의 내무·외무장관을 초청한 가운데 난민대책 회의를 열고 국경 통제를 강화해 난민 유입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국가는 이날 채택한 선언문에서 “이주민과 망명 신청자를 무한정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회의를 주재한 요한나 미클라이트너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난민 유입을 지금 줄여야만 한다. 이는 EU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제외된 그리스는 외교적 항의 의사를 표하고 이 회의에 대해 “비우호적인 처사”라고 비난했다. 더불어 난민 수용에 대한 부담을 언급하며 EU를 압박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난민 위기의 짐을 모든 EU 회원국이 공동으로 나눠 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EU의 어떤 추가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처럼 유로존 국가에 속하지 않은 덴마크, 체코 등이 EU에서 줄줄이 탈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EU에 회의적인 덴마크나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체코에서 이미 ‘탈EU’를 언급하고 있다.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는 23일 “영국이 EU를 떠나면 체코에서도 수년 뒤 EU 탈퇴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럽 최대 은행인 HSBC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경우 파운드화 가치가 최대 20% 떨어져 19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고, 경제성장률은 1.5% 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역시 브렉시트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브렉시트는 모두에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나쁘다”면서 “어떤 경제 주체도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투자도, 고용도,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난민 할당제, EU분열 뇌관으로… 헝가리 국민투표 선언
입력 2016-02-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