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첫 목회지인 전남 무안의 조그만 시골교회에서의 이야기이다. 신학교 졸업 후 군 제대하고 처음 부임한 곳인지라 남다른 애착이 깃든 교회였다. 한데 총각 전도사라 교인들 모두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부임 후 첫 대면에서 총각 전도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지만) ‘혼자 밥이나 제대로 해 먹겠어?’ ‘설교는 그렇다 치고 산길과 논두렁을 헤치고 심방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등등 걱정이 태산 같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택이라고 강대상 옆 벽 하나 사이로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짜리 오두막집이었다. 연탄아궁이도 아닌 솔가지로 불을 지펴 난방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열악한 시골 사택 환경이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전기밥솥을 장만해 주셔서 불을 지펴 끼니를 해결하는 수고는 면했다. 그럼에도 식사를 해결하기란 여간 고생이 아닐 수 없었다. 밥은 밥솥으로 해결한다 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해서 아침까지 그 열기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그러나 그 고민은 인간적인 고민이었다. 교인들은 그 다음 주부터 솔가지 땔감을 모아주었고, 교회에 올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빈손으로 오지 않고 돌아가면서 반찬을 공수해 주셨다. 김 집사님은 취나물을, 박 집사님은 호박나물을, 정 집사님은 고사리나물을, 조금 형편이 좋았던 백 집사님은 닭죽을 쑤어 오셨다.
어느 주일 오후 모든 성도가 다 돌아가고 혼자 남은 공허한 시간. 교회당 뒤편 산속의 부엉이와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성도들의 정성이 버무려진 저녁 식탁을 대할 때면, 임금님의 수라상보다 더 진수성찬 같았다.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는 창문 너머로 토끼들이 뛰놀던 언덕배기를 올려다보며 혼자 먹던 김치찌개와 계란찜의 그 맛을 편안한 아파트 생활하는 지금 사람들은 알까 모를까. 온 정성을 다하여 총각 전도사를 섬기셨던 그 시절 그 교회 성도님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주의 종을 섬기고 있을지 감사한 마음을 늦게나마 이렇게 전한다.
지금은 한 교회에서 22년째 목회하다 보니 성도 모두가 한 가족 같다. 그중 한 권사님의 사랑은 잊을 수 없다. 부인 권사님과 사별하시고 홀로 지내시며 열심히 신앙 생활하시는 분이다. 그 권사님은 집 옆에 텃밭이 있는데 그곳에 소일거리로 작은 농사를 지으신다. 가을 대심방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미리 준비해둔 보따리를 한가득 내놓으신다. 그 보따리에는 참깨 들깨 참기름 콩(콩도 여러 종류) 취나물 고사리 더덕이 가득이다. “목사님 기관지 좋지 않은데 드시면 좋다”며 도라지도 내놨다.
권사님의 그 정성을 받은 아내는 손사래를 하면서도 받아들고 함박웃음으로 차에 오른다. 아내가 친정아버님을 어려서 여읜 탓일까. 권사님이 싸주신 보따리를 손에 쥘 때 친정아버님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던 아내의 그 행복한 미소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며칠 전 정월대보름을 맞아 아내가 아침부터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 장만을 했다. 점심때 한상 가득 채운 각종 나물과 맛깔스러운 음식을 대하며 아내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성도들의 정성이 깃든 이 음식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행복한 식사를 나눈 후 아내가 아침부터 준비한 나물과 몇 가지 반찬을 주섬주섬 보따리에 싼다. “어디가요?” “홀로 계신 권사님 한 끼 식사 맛있게 드시라고 갑니다.” 아내는 이 말을 하고 차의 시동을 건다. 나는 행복한 목회자다. 매일매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일성 군산 풍원교회 목사
◇약력=△한신대 대학원 졸업(M.A.)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군산노회 부노회장 △기장 총회 교육위원장 △풍원교회 담임목사
[따뜻한 밥 한 끼-이일성] 솔가지 지피는 시골교회 사택의 밥상
입력 2016-02-25 18:58 수정 2016-02-25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