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어느 추운 겨울 새벽이었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무언가를 땅바닥에 끌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교통사고를 당한 개 한 마리가 포대 위에 실려 있었습니다. 살아 있었지만 고개는 옆으로 누운 상태였고 하반신은 차바퀴가 지나갔는지 다 망가졌습니다. ‘불쌍한 녀석, 새벽에 집을 나갔다가 질주하는 차에 깔렸구나.’ 보호 능력이 없는 동물,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얘야,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이란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일 것입니다. ‘은혜’가 ‘죄와 범죄 자체’를 다뤄 값없이 용서를 베푸는 것이라면, ‘긍휼’은 ‘그로 인한 고통과 비참함과 고난 가운데 있는 이에 대한 체휼과 위로와 도움과 치료’일 것입니다.
그런데 동정 어린 마음이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힘들고 험해서 긍휼의 마음을 잃어버릴 때가 있는 거죠. 피곤하고 힘든 가운데 운전하는데 다른 차가 거칠게 나오면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강조와 무게를 잘못된 곳에 두어도 잘못 나갈 수 있습니다. 옳으니, 그르니, 혹은 아직 받지 못한 축복만을 염두에 두어도 긍휼을 베풀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은 ‘상처 입은 사람들’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아내도 남편도 다 상처 입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 상처를 숨기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하나님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위해 긍휼을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긍휼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천사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첫 번째 천사인 ‘의의 천사’에게 물으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로 세상을 더럽힐 것입니다.” 두 번째 ‘거룩의 천사’도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 넣을 것입니다.” 세 번째 ‘빛의 천사’도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어둡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긍휼의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시면 좋겠습니다. 인간들은 분명히 불의와 더러움, 어두움으로 더럽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새해를 맞아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와 국내 어린이들을 후원키로 작정했습니다. 여러 성도들이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그분들이 일하는 목적이 새로워졌습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또 힘 있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은혜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긍휼히 여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희망이 시작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박삼열 인천 송월교회 목사
[나눔설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입력 2016-02-25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