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휴대전화는 현재 꺼져 있다. 한국기원을 통해서도 “당분간 일체의 접촉을 피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자신과의 싸움인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이다. ‘세상에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으며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는 바둑의 진리, ‘무심(無心)’의 경지에 빠져 있다고나 할까.
다음 달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프로그램 ‘알파고’와 바둑 5연전을 앞두고 있는 이세돌 9단 얘기다. 그는 22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판을 지냐 마냐 정도가 될 듯하다”며 특유의 자신감을 보였다. 한 판이라도 지면 인간이 기계에 무너지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던 그답다. 알파고가 뒀던 기보들을 분석하고, 잠들기 전 가상으로 컴퓨터와 대국하고 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대표로 나선 중압감이 묻어난다.
인공지능 대표 알파고는 구글의 ‘딥마인드’가 2014년 개발했다. 이 회사의 주력 분야는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알파고에는 이 기술이 탑재돼 있다. 사람처럼 스스로 전략을 짜 어떻게 이기는지를 자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알파고는 최근 한 달간 100만번의 대국을 뒀다. 인간에 빗대면 1000년간 바둑을 수련한 셈이다. 성적은 놀랍다. 다른 바둑 프로그램과의 500차례 대국에서 한 차례 빼고 다 이겼다. 승률 99.8%다. 급기야 인간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유럽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에 5대 0 완승을 거둔 것이다. 첫 번째 대결에서만 2집 반 차이로 근소하게 이겼을 뿐 나머지는 183수, 166수, 162수, 214수만에 잇따라 불계승했다. ‘딥러닝’으로 대국을 거듭할수록 강해졌고 이에 유럽챔피언은 속수무책이었다.
AI와의 대결에서 인간의 참패는 이제 놀랍지 않다. 1996년을 마지막으로 컴퓨터와의 공식적인 지능 싸움에서 인간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97년 체스 대결이 그랬고 2011년 퀴즈 대결이 그랬다. 56년 MIT 교수였던 마빈 민스키와 존 매카시에 의해 처음 소개된 후 AI의 진화는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AI가 인간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도달하고, 그 이후로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티브 호킹 박사는 “AI의 발전은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AI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는 AI, 로봇 등의 발전으로 2020년까지 사라질 일자리가 510만개나 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인공지능학자로 유명한 제리 카플란 박사가 쓴 ‘인간은 필요 없다(Humans need not apply)’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거나 아예 사라질 것이다. 결정에 따른 결과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스템들이 점점 자율화하고 인간이 관리할 필요성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일부 시스템들은 자기가 정한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후대를 계획할지 모른다.” ‘터미네이터’ ‘아이로봇’ 등의 영화가 현실이 된다니 소름끼친다.
이번 대결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바둑 9단을 무너뜨리고 인공지능의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구글의 전략적인 쇼라는 지적도 있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알파고를 만나게 될 것이란다. 인간과 기계의 ‘반상 대결’을 단지 호기심의 눈으로만 쳐다볼 수 없는 이유다. 잇따른 경고에도 전문가들은 결국 인류 스스로 도덕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인공지능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운명의 키는 역시 인간이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여의춘추-김준동] 인간의 미래 묻는 盤上의 ‘알파고’
입력 2016-02-25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