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후진국형 전염병’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핵 발생 및 사망이 가장 많다. 결핵 발생률은 201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100명으로 일본(20명) 영국(14명) 독일(4.5) 미국(3.9명)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사망률(인구 10만명당 4.9명)도 2위 일본(1.7명)의 3배 가까이 된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은 오명이다.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은 더 강력해지고 위협적인 ‘다제내성 결핵’이 잇고 있다. 다제내성 결핵은 말 그대로 여러 약물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매우 어렵고 전파 위험도 높다. 국내 다제내성 결핵 환자는 1800명(2011년 기준)으로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심각한 결핵 상황에 정부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초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계획’에서 올해 결핵 치료비 전액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해 환자의 치료를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또 의료기관의 결핵 진료를 저해할 수 있는 진료비 심사나 삭감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의료계는 반색하고 꼭 필요한 지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환자들의 기대감도 컸다.
그런데 복지부의 결핵 퇴치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진료비 심사를 맡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결핵 신약의 건강보험 지원을 삭감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만에 나온 다제내성 결핵 신약 ‘서튜러’가 대상이다.
이 신약은 80%의 높은 치료 효과와 상대적으로 적은 부작용 때문에 다른 약물에 이미 내성이 생긴 많은 결핵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조차도 ‘2상 임상시험’만으로 가속 판매 승인을 내줬을 정도다.
우리 정부도 빠른 판매 허가와 건강보험 적용을 서둘렀다. 덕분에 지난해 5월부터 한 알당 15만8000원 하는 비싼 신약을 환자 본인 부담금 5%만 내고 접할 수 있게 됐다. 치료 기간인 6개월 기준으로 148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건보 지원이 삭감된 일부 환자는 약봉지를 내려놓고 있다. 의사들도 신약 처방을 꺼려한다. 심평원은 사례별로 ‘병이 미미하다’거나 ‘내성이 나타나지 않은 약도 있는데 굳이 신약을 쓸 필요가 없다’ 등의 이유로 삭감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환자에게 신약이 꼭 필요한 의료 현실을 고려하기보다 세계보건기구(WHO) 치료 가이드라인의 보수적 해석에 치우쳐 심사하는 심평원의 탁상행정이 한몫하고 있다.
한마디로 복지부와 심평원의 손발이 맞지 않는 형국이다. 복지부는 난치 결핵 환자의 건강보험 문턱이 높아 진료비 삭감이 이뤄지면 치료가 위축되는 문제가 있다며 이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상위 부처는 ‘말’로 ‘결핵 퇴치’를 떠들고, 이를 실행하는 하위 기관은 ‘따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 지원이 끊긴 환자들 중에는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복용을 중단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신약을 복용하다 끊을 경우 이마저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수십년 만에 개발된 결핵 신약에까지 내성이 생긴다면 주변 확산이 우려돼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불필요한 약제비를 감시하는 것은 심평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필요해서 ‘환자 맞춤형’으로 처방된 결핵 신약에 대한 계속되는 삭감이 환자 고통을 덜어주기보다 단기적 건강보험 재정 영향만을 고려한 행정 편의적 판단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 손발 안 맞는 결핵 정책
입력 2016-02-25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