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1967년 영화 ‘졸업’. “벤, 뭐하고 지내니”라는 질문에 주인공 벤저민(더스틴 호프만 분)은 수영장에 누운 채 “그냥 부유하는 중인데요”라고 대답한다. 미국 동부의 명문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귀향했음에도 불안한 미래에 대한 심경을 ‘부유(浮遊)’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시적인 노랫말과 감미로운 멜로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이끄는 한 축은 불확실성에 고민하는 청춘이다.
오래된 대사가 떠오른 것은 우리 현실과 무관치 않아서다. 졸업철을 맞은 대학가에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란 격려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처럼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대), ‘좋아하는 일을 하라’(마크 저커버그, 2011년 벨 헤이븐 커뮤니티스쿨)는 명사의 졸업 축사는커녕 덕담을 주고받기도 예사롭지 않다.
주초 지방 국립대의 아들 졸업식에 간 지인은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공식 졸업식 행사가 열리지 않은 데다 아들의 단과대학 동기생 수백명 중 불과 몇 십명만 참석해 대부분 꽃다발도 없이 각자 알아서 사진 찍고 졸업장을 찾아가더라는 것이다.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지 않은 졸업장이 수십장 쌓여 있는 대학도 있고, 택배로 졸업장을 전달받는 사례도 제법 된다고 한다. 졸업생보다 꽃장사가 더 많다는 내용이 보도될 정도로 대학 졸업식장이 휑한 곳도 더러 있다.
25% 수준이라는 사상 최고의 청년 체감실업률은 졸업식을 ‘불편한 행사’로 만들었다. 취업포털 등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2월 졸업예정자 중 32.9%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들 중 54.1%는 ‘취업을 하지 못해서’라는 이유를 댔다. 인터넷에는 ‘행복 끝 고생 시작’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갈림길’ 등으로 졸업을 비하하는 글들이 달렸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부모세대인 나 역시 책임이 있다. 미안하고 씁쓸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불편한 졸업식
입력 2016-02-25 18:05 수정 2016-02-25 21:32